[기자수첩] 고유가의 주범은 부시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 이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나서 '심심한 사과'를 표명했으나, 세계 여론은 악화 일로다.
미국의 우방축에 드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자지인 아랍뉴스는 7일 "독립적인 조사" 운운하는 럼스펠드의 제의를 시간낭비라고 일축하고 "그나마 미국의 평판을 회복하고 싶으면 조용히 물러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다른 아랍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지러운 중동정세로 골병 드는 건 역시 경제다. 최근 세계 각국은 치솟는 유가로 가슴을 졸이고 있다. 4월 초까지만 해도 34달러대에서 진정 조짐을 보이던 유가가 최근 1990년 걸프전 이후 처음 40달러에 이르자 국제에너지기구(IEA)까지 '오일 쇼크'를 거론하고 나섰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세계경제 성장률은 1년간 0.5%포인트 뒷걸음질 친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석유소비국들은 가뜩이나 민감한 경제가 고유가로 위협받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마치 감산을 강행한 OPEC이 고유가의 주범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OPEC은 4월 초 생산쿼터를 하루 100만배럴 줄였으나, 실 산유량은 거의 변동없이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가는 그동안 16% 이상 급등했다.
주요 석유소비국들의 대변단체나 다름없는 IEA조차도 지금의 고유가는 단순한 수급 문제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현재의 고유가는 석유 수급보다는 이라크 사태와 석유시설에 대한 테러 위협 등 불안한 중동정세로 인한 불안 심리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동 정세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제 갈 길을 가는 부시와 미국이 있다. 결국 고유가의 주범은 OPEC이 아니라 미국인 것이다.
그래도 부시와 미국은 '마이 웨이'를 노래할 모양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의 69%가 럼스펠드의 사임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부시는 8일 주례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서 '미국 임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가는 미국의 임무가 지속될 때까지 고공비행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