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과거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시평] 과거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이상빈 한양대 교수
2004.07.22 10:10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시평] 과거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

한투와 대투는 한때 우리나라 투신업계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러나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무리수로 인해 한투와 대투는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부실화의 늪에서 헤매다가 지금 매각의 수순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한투와 대투의 부실이 깊어짐에 따라 여기에 상응하여 투신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졌다는데 있다. 투신의 신탁계정과 고유계정사이에는 편·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이는 고객 돈인 신탁계정과 회사 돈인 고유계정을 분리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단추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가 부양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진맥진한 양 투신을 위해 브리지 론이라는 방법으로 이의 편·출입을 사실상 허용하여 오늘날 투자자로부터 버림 받는 투신업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신탁계정과 고유계정사이에 편?출입을 막기 위해 깊은 강이 존재하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강에 다리를 놓아 편·출입을 용이하게 하니까 투자자들이 투신업 자체를 불신하게 되었다. 이의 결과 오늘 날 증시에 기관투자가의 존재는 미미할 뿐만 아니라 개인투자가도 떠나버려 증시는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한투 및 대투문제의 시초가 10 여 년 전에 일어났다면 요즘에는 카드대란 문제가 한투 및 대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카드대란에 대한 감사원의 발표에 의하면 카드대란의 발단은 허술한 감독체계보다 카드를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택한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에 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더해 규제는 무조건 풀수록 좋다는 규개위의 결정이 한 몫을 하였다. 규제는 무조건 풀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는 강도를 높여야 한다. 카드로 인한 반짝경기는 순간이었지만 이의 후유증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에 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금융파탄의 공통점은 투신회사 또는 카드회사의 위험관리를 무시한 채 이들을 주가 또는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체질개선에 의존하지 않고 손쉬운 단기처방에 매달리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평범한 속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격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얼어붙는 상태가 지속되자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통한 주식시장 부양이 심심하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주식시장이 활성화 되면 우울증에 빠져 잇는 한국경제를 소생시킬 수도 있다는 바람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식시장의 고수익으로 연기금의 고갈시기를 뒤로 미룰 수도 있다고 하나 주식투자의 수익률이 국채수익률보다 낮은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인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연기금의 주식투자확대는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증시관계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관해 증시관계자들의 의견을 참조하는 것은 마치 생선가게를 지키기 위해 고양이의 의견을 참조하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 증시에서는 장기 투자로 인해 초과 수익을 획득하는 소위 장기투자의 위험프리미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단타위주의 변동성이 높은 시장이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연기금의 주식투자가 확대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증시에 투자하여 위험에 상응한 수익을 제고할 수 있다면 연기금의 펀드매니저들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주식투자를 하면 되는 것이지 우리 증시의 문제점을 치유하는 임무까지도 맡을 필요는 없다.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고 이를 통해 기관투자가가 육성되면 증시의 고질적인 폐단이 치유될 수 있고 이러한 증시에 안정성을 중시하는 연기금이 가세할 때 우리 증시는 한 단계 더 성숙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과거에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도 미래에 실패를 회피할 수 있으면 현명한 자이고 과거에 실패를 경험하고도 미래에 또 실패를 거듭한다면 이는 아둔한 자이다. 우리는 지금 무대 위의 주인공만 바뀐 채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침몰하지 않고 승승장구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원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서는 오늘 날의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지금 과거의 실패를 재연하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소신의 결과라고 치부하고 싶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노후를 위해 지갑을 굳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소비가 얼어붙는 것이 바로 일본식 장기 불황의 출발점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