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장기 침체를 피하려면
근래의 경제상황은 막연한 우려를 구체적 우려와 비관적 기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예비적 동기로 인해 투자와 소비도 더욱 위축되기 쉽다. 더욱이 고유가와 적지 않은 채무부담에 수출과 내수의 단절 등 당면한 문제가 꼬이면서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이미 취약부문의 연체율 상승이라든가 자산매각수요의 증가 등은 우리경제의 내부적 채무상환여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자기실현적 시장 기대가 악화되면서 어떠한 정책처방의 효과도 무력화되는 나쁜 균형에 이르기 쉽다.
우리가 현 상황을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어렵게 인식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전환기에 다양한 혁신과 현상유지 의지가 혼재되어 해결능력과 해결해야 될 부담사이의 괴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정작 수많은 제안과 처방이 제시되고 있지만 의견표출과정에서 제대로 된 실천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책형성과정을 모니터하거나 효과를 분석하기에 앞서 별 효과 없는 새로운 대책을 끊임없이 마련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묘수가 아니라 기본적 원칙을 전달하고 구체적 대안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는 실천주체의 부재이다. 분명 우리의 어려움은 변화가 불가피한 사회지배구조상의 문제이다.
위기이후 부각된 각종 위원회와 NGO의 활동은 지난 성장기의 지배구조가 미처 채우지 못한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일견 시장과 밀착한 새로운 지배구조의 축은 긍정적 피드백을 제공하고 결정과정상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새로이 대두된 지배구조의 축은 아직 시장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면서 상당부분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지만 현 우리 사회에는 이를 수용할 만한 공감대 형성에 한계가 있다.
전문성 이전에 일관된 추진에 필요한 대표성과 포용성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다. 과도기적이긴 하지만 대체 지배구조의 대두는 갈등구조를 강화시켜 실천면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실제 명령과 통제(Command and control)시스템에서 시장밀착형 지배구조로 변환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 구석구석 공백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결국 피상적인 시장지향적 지배구조개선노력은 오히려 구속력이나 집행력이 저하된 채 빈번하게 시스템 마비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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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개방환경에서 국가차원에서의 기관구축(institution building)노력은 더욱 지연되고 있다. 변화초기에 적응하지 못한 노사 문제나 양극화와 연관된 갈등구도의 해소는 여전히 발 빠른 정책대응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공감대 형성에 이르는 과정은 아직 메끄럽지 못하다.
이러한 환경이 지속될 경우 더욱 더 일관된 정책의 수립이나 집행이 어려워진다. 불가피한 사회혼란의 장기화는 성장에 필요한 역동성을 저하시키고 투자위축을 통해 성장 잠재력마저 홰손시켜 장기침체로 이르게 된다.
우리 경제의 역동성 저하나 계층간 격차확대 등 구조적 문제의 원인은 특정 경제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인식되어도 시정되지 못하는 현상은 분명 시스템차원의 문제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전통적 정책대응규칙인 불안한 신호를 죽이는 차원의 노력에만 몰두하고 있다.
일관된 정책 추진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실질적 개선노력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비용이 적게 드는 시스템차원의 작동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도 지배구조의 변모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인식과 대처에 있어 시장신뢰를 얻을 수 있는 시장형 경제 사령탑이다. 다기화되고 복잡한 결정과정과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려운 여건하에서는 문제만 거론될 뿐 처방이 구현되기는 어렵다.
시장규율과 감독체계의 정비를 통해 다양한 문제들이 가급적 시장내부의 인센티브차원에서 시장작동을 전제로 해소는 구도가 중요하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려면 장기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기안정 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포착?계약가능한 모든 위험들이 분산되어야 한다.
국가차원의 위험 식별과 관리를 위한 사전 노력이 강화되지 않는 한 우리는 환율, 금리, 자산가격의 급격한 조정이라는 삼각파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국면전환의 시기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