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설익은 방카슈랑스

[기자수첩]설익은 방카슈랑스

최명용 기자
2004.08.10 16:26

[기자수첩]설익은 방카슈랑스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한 한 고객은 얼마후 자신이 든 보험이 연금보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적금처럼 목돈을 모으려고 저축성보험에 가입한다고 했는데 60세 이후에 매달 조금씩 연금을 타게 된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게 됐다.

은행을 다시 찾아 항의를 한 것을 당연지사. 하지만 고객의 항의에 판매를 담당했던 은행원은 "저축성보험이나 연금보험이 같은 거 아닌가요?" 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 계약은 해지됐고 은행에 지급됐던 수수료도 환수됐다.

보험은 어렵다. 용어부터 어렵고, 오랜 기간동안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보장내용에 대해 설계사들이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만큼 설계사들의 자질이 중요하고, 보험사도 설계사들의 자질 높이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길게는 1년동안 설계사들에게 교육을 시켜가며 보험을 팔 수 있는 자질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는 이런 '공'을 제대로 들이지 않았다. 은행원들은 벼락치기로 자격증을 따고 무작정 보험을 팔아야 한다. 그것도 하루에 몇건, 한달에 몇십건을 말이다.

외환위기를 지내며 구조조정을 당해 절대 인원 수가 줄어 과거에 비해 몇배의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은행원들. 짬짬이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자기계발도 해야 하는데 이제는 보험까지 팔아야 한다. 당연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험판매 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다.

엉뚱한 상품을 소개하고 엉뚱한 보험계약서를 체결하는 진풍경은 비일비재하고, 가짜 계약까지 만들어 고객들의 항의를 받기 일쑤다. 예전에 보험아줌마들의 판매 관행을 은행원들이 되풀이하고 있다.

방카슈랑스는 좋은 제도다. 은행에 공과금을 내러 간 김에 좋은 보험상품을 저렴하게 가입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방카슈랑스는 설익었다. 은행은 보험사에 압력을 가해 높은 판매수당의 비싼 보험을 창구에 진열했고 바쁜 은행원들은 대충대충 보험을 판다.

설익은 방카슈랑스가 숙성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할 때다. 설익은 채 방카슈랑스를 확대하면 배탈에 걸릴 환자만 늘어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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