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경기회복' 한판승의 조건
시원한 한판승으로 아테네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터졌다. 선수들이야 몸이 달겠지만 보는 재미는 역전승이 최고다. 하이라이트인 준결승에서 이원희 선수는 상대에게 절반을 먼저 허용한뒤 저돌적인 공격으로 11초 뒤에 역전한판승을 이끌어냈다.
대표선수들이 메달 사냥에 한창인 사이 국내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경제회생이라는 성과를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청와대는 규제 위주인 부동산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고 한국은행은 콜금리 인하를, 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 요금 인하 카드를 꺼내들고 경기장에 나섰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적극적인 재정지출 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을 걸지는 않았고 몸풀기 단계다. 재정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늘리겠다는 것인 만큼 일단은 선수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인 줄로만 알았던 정부가 갑자기 심판의 역할도 맡겠다고 나섰다. 주심은 재경부였고 부심은 공정위였다. 고유가에 따른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정유사에게 잇달아 지도와 경고를 내린 것이다. 유가가 오르고 있는데도 정유사 이익이 늘고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인상했다는 단서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어리둥절해하는 눈치다. 해외수출을 통해 이익을 늘렸고 세금 때문에 회사가 제품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은 3분의 1밖에 안 돼 담합은 불가능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선수들에게 체중조절이 최대 걸림돌인 것처럼 현재 경기장에서 정부에게는 고유가와 고물가가 암초다. 하지만 룰을 뒤집고 선수와 심판을 겸한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고유영역이 있는 만큼 선수와 심판을 겸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모르지만 유류세 인하논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소극적인 조치로 일관한 정부의 입장은 옹색하다.
경기규칙을 무시한 한판승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신승(辛勝)이 더 기억에 남는다.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고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IMF체제와 카드대란 등 선수와 심판을 겸한 오만한 정부의 후유증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