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충청도 부동산시장은 지금 패닉'
“저수지에 빠져 죽는 사람 여럿 나올 거유. 벌써 누구는 야반도주 할 거라는 소문까지 파다해 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이 무산된 지 하루가 지난 22일. 행정수도 후보지였던 충남 연기군이나 인근 조치원, 부여군 등에서는 허탈함과 분노에 휩싸인 주민들의 성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설마 했던 위헌판결의 충격을 잊거나 아니면 이기기 위해 밤새도록 술판이 벌어진 것은 물론 앞으로 닥칠 경제파국을 염려하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현지 주민반응 찬반 엇갈려=일단 수용예정지나 외곽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이번 헌재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마디로 “충청도가 또 한번 당했다”는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는 형국이다.
동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누가 이쪽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정부) 맘대로 옮긴다고 해 놓고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냐”며 “충청도 주민을 얼마나 핫바지로 알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토지보상 현실화를 위해 표면적으로 수도이전을 반대해왔던 주민들도 본심으로는 수도이전을 원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전언.
금남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부가 국민투표를 하든 아니면 기업도시를 유치하든 이제는 믿고 싶지 않다”며 “그동안 정부가 실거래가로 받은 양도세나 취득세를 도로 다 토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수도이전을 반대했던 일부 주민들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수도이전 반대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연기군 남면 진의리 이장 임만수 씨는 “조상 대대로 수 백 년 동안 살아온 땅을 행정수도로 빼앗길 수는 없다”며 “이번 위헌판결은 지극히 정당한 결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매입 토지, 아파트 해약문의 빗발=매물을 쏟아내봤자 거래조차 되지 않을 것이 뻔해 헌재 판결이후 새로 나온 물건이 실제로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다만 헌재판결 당일과 다른 점은 값이 많이 떨어진 매물이 나타나면 소개해달라는 전화문의가 간혹이나마 걸려오고 있다는 점. 투자, 또는 투기의 고수들은 값싼 손절매 매물을 거둬들일 수 있는 호기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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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지 부동산시장 분위기는 패닉, 그 자체다. 현지 부동산업소에는 벌써부터 매물로 던지려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
“가까운 친구들이나 친인척들에게도 토지를 많이 알선해 줬는데 지금 완전히 사기꾼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연기군 남면 종촌리 남면공인 박승후 사장의 하소연이다. 취재 도중에도 박 사장의 휴대폰은 투자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거래당사자간 분쟁도 나타나고 있다. 계약금만 치르고 아직 잔금이 남아 있는 토지의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매수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군 은산면의 절대농지 1200평을 최근 1억원에 팔았던 김 모 씨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5000만원을 받았으나 매수자가 잔금 5000만원을 내지 않겠다고 버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난 6월 30대 1이 넘는 청약경쟁률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던 조치원 신흥리 대우 푸르지오도 헌재 발표 이후 계약자들의 해약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주민이 굳게 잠긴 장기면의 한 부동산사무실 내부를 들여다 보고 있다.
◇투자자 피해 속출할 듯=현지에서는 투자자들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외지 투기꾼은 물론 수용예정지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지 주민들은 그동안 대토를 의식해 부여나 청양군, 전의면 등의 토지를 사들여왔다.
특히 현지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들 지역의 땅값은 이미 4~5배 이상 뛰어 오른 뒤에 매입해 자칫 지가하락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정수도 후보지 외곽지역의 피해 정도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수도이전 수혜를 기대해 수용지구보다 상승폭이 더 컸던 탓이다.
행정수도 이전의 최대 수혜지로 꼽히던 조치원에 위치한 침서지구의 경우 평당 120만원 선이던 땅값이 350만~400만원까지 오는 상태. 지금도 이 곳은 3층짜리 규모의 신축빌라 공사가 한창이다.
조치원 문화컨설팅 류찬열 사장은 “대부분 금융기관의 대출을 낀 투자목적의 신축 건물들”이라며 “수억원 이상을 대출 받아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침 이 부동산에서 만난 투자자는 지난달 조치원 신흥리 번암 주공아파트 15평을 대출을 끼고 7000만원에 샀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세가 2000만원에 불과했으나 거품가격인줄 알면서도 무리를 했다는 것.
◇대출규모 연기군만 1~2조원 달할 듯=행정수도 이전 무산에 따른 피해규모는 현지에서 발생한 대출 규모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실제 연기군내 6개 농협에서 이뤄진 대출금액만도 4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국민은행 등 시중은행의 대출 규모까지 합치면 최소 1조원에서 많게는 2조원까지의 돈이 묶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면농협 김진호 전무는 “이 일대 농협의 예대비율(예금액수 대비 대출금액 비율)은 80% 수준이었으나 현재 95% 이상에 육박하고 있다”며 “대부분 최근 1년 이내에 토지 투자목적의 담보 대출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토지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대출자들이 대출이자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 상당수 토지가 무더기로 경매에 넘겨질 것으로 현지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해당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게 현지의 설명이다.
실제 조치원 일대 욱일, 번암 주공, 신흥 주공 아파트의 경우 가격이 오르면서 그만큼 대출한도액도 상향조정된 상태. 그러나 아파트값이 빠질 경우 금융권의 부담으로 되돌아 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건설업체도 타격 클 듯=행정수도 이전을 대비해 조치원 일대에 아파트 분양을 준비해왔던 건설업체들은 이번 사태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당장대우건설은 신흥 푸르지오에 이은 2차 사업으로 다음달 12일 인근 죽림리에 286가구를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분양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림산업의 경우 조치원읍 신안리에 약 2만5000여 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계약금으로 지급된 돈만 약 100억~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도 시행사를 통해 죽림리에 3만6000여 평 규모의 부지매입을 추진, 현재 50% 정도의 부지 매입이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지역의 땅값은 지난해만해도 평당 20~30만원 수준이었던 곳. 그러나 건설업체들의 매입가격은 평당 150~200만원에 육박해 부지매입에 따른 피해 규모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밖에코오롱 건설,LG건설등도 최근 시행사와 함께 신흥리 일대에 토지매입 작업에 착수했다는 게 현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