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경제가 좋아지면 돈을 쓰겠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 교수는 1995년 포린 어페어즈 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시아 네마리 용의 경제성장은 기술발전이 없이 요소의 축적을 토대로 한 성장으로서 발전에 따라 요소축적속도가 정체되면서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의 예측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97년 중반 동남아가 외환위기를 당하고 그해 10월부터는 우리경제도 외환위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졸지에 아시아 경제위기를 예언한 예언자의 반열에 오른 크루그만 교수는 한때 그러한 칭송이 부담스러운 듯, 본인은 10%정도 옳았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150% 틀리는 바람에 부각이 된 것 같다는 겸양의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성장이 정체된다고 했지 그처럼 급격하게 위기가 오면서 추락을 하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도 크루그만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애널리스트가 있었다. 바로 도이치 은행의 스티브 마빈 애널리스트이다. 당시 쌍용증권 소속이었던 그는 1995년부터 줄기차게 한국물 매도(Sell Korea)를 주장해왔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중반 “죽음의 고통(Death Throes)”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정부과 기업부문에 의해 폭행(rape)당하고 있다는 강한 표현을 통해 한국경제의 앞날이 의심스럽고 곧 주가는 300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지적을 했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나 종합주가지수는 280근처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데 그는 최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실제 수출, 증시 지표 등이 대부분 부정적인데도 한국 정부 관리나 산업 및 증권업계 등은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속적인 부정적 진단에 일방적인 신뢰를 보일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의 보고서는 최근 우리 경제에 나타나는 괴리현상을 잘 지적하고 있다.
심리지표에 근거한 낙관론과 이를 비웃기나 하듯 헤매고 있는 실물지표와의 괴리현상이 최근 한국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민간소비는 2004년 1/4분기에 7분기만의 증가세를 기록한 후 올해 1/4분기까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그 속도는 매우 완만하다.
2004년 2/4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0.5%, 3/4분기에 -0.8%를 기록한 후 4/4분기에 +0.6%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이다. 이 지수는 2004년 2/4분기 91, 3/4분기 89, 4/4분기 87을 기록한 후 2005년 1/4분기에 108을 기록하였다. 이 지수대로라면 소비의 커다란 상승이 예상되는 데도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전경련에서 조사한 투자부문 경기실사지수는 3월 119.2, 4월 117.6으로 상당한 상승세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 지표는 시원찮다. 특히 문제가 될만한 것은 기계류수입액 증가율이 1월 46.9%에서 2월 8.9%로서 둔화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과 경기 선행지표인 국내기계수주가 2004년 4/4분기 -5.5%에서 올해 1~2월, -9%를 기록하여 작년 하반기이후 계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지표와 실제지표의 괴리가 투자에서도 심각한 것이다.
“앞으로 좋아질 것 같은가?”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돈 좀 쓰겠는가?” “아니다.” “언제 쓰겠는가?” “경제가 진짜로 좋아지면 쓰겠다.” “당신이 지금 돈을 안 쓰면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데도 안 쓰겠는가?” “상관없다. 실제로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쓰겠다.”
이런 숨바꼭질 같은 문답이 이어지는 와중에 경제의 회복세는 지연되고 있다. 봄이 어디론가 실종된 듯한 요즈음 아직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녹여줄 화끈한 정책패키지 좀 없을까?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