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평]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상빈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2005.06.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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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본식 장기불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리 주위에서 점차 힘을 얻어 가고 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노후대책이 필요하지만 연금제도의 미비 등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자들의 뇌리를 맴돌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어 소비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또 기업은 현금을 비축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해 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인 소비와 투자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경기 침체가 풀릴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의 조타수인 부총리도 지난 달 경제 시스템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를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고령화의 진전 등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10년 내지 15년 정도"라고 언급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알려진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10년 내지 15년 중 대부분의 시간이 날라 가기 때문에 일본식 장기 불황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은행 및 기업의 구조조정이 완료됐기 때문에 일본식 장기불황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장기 불황의 덫에 걸린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경제정책의 무리수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일본과 여건이 다르다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과거 일본경제의 실패 원인은 일본 정부의 경제실태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했다는 데 있다. 일본 정부는 케인즈 학파가 주장하는 총수요 관리정책만 있으면 국제사회의 영향을 차단하고 총수요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국가 간 경제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하지 못한 일본의 경제운영 방식은 실패로 끝났고 이는 바로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했다.

경제정책은 시장을 토대로 정확한 판단을 내린 다음 결정해야 하며 경제정책 운용의 성과는 시장을 통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수립 내지 집행돼야 하나 일본은 이 점을 간과했다.

 

일본의 사례로 볼 때 부총리가 언급한 대로 경제 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이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 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다. 경제정책은 시장에서 내 보내는 정보를 토대로 하여 각 경제주체의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근간을 이루어야지 시장을 무시한 반 시장 경제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작금 정부 경제 정책의 중심에 부동산 대책이 자리 잡고 있다. 시장에서 보내는 정보를 모두 무시하고 정부의 행정력으로 시장의 물길을 돌려 보겠다는 발상이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국민의 경제적 태도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이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에 대한 강한 수요가 존재하고 있는 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세금을 통해 억제될 수 없다. 수요초과 상태에 있는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은 모두 가격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왜 특정 지역의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토대로 수요를 감소시킬 대책이 나오든지 아니면 공급을 확대시킬 대책이 나와야 올바른 부동산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효성 없는 부동산 대책만 남발하여 부동산 가격의 상승만 부추긴다면 이는 곧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재정지출만 확대하다가 경기도 부양시키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가속화시킨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 된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바람과 태양이 시합을 벌이는 우화를 연상시킨다. 부동산 투기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세금 또는 행정력이라는 바람을 동원하기 보다는 경제주체의 행동을 유인하는 햇볕이라는 유연한 경제정책이 요구된다.

이러한 경제 운용 시스템의 획기적 전환 없이는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민들의 마지막 생계수단인 자영업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경직화되고 타성에 젖은 정부의 경제운용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이라는 기나긴 터널에서 헤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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