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열린 유니버설 퀸호 명명식에서 만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줄곧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7년만에 초대형 유조선을 인수하는 날이지만 이튿날의 북한 방문을 염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명명식을 끝내고 테이프 커팅을 하는 자리에서도 현회장은 예민해져 있었다. 딸 정지이 과장이 해운업계 인사와 상견례를 하던 자리에서 명함이 떨어진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분명한 목소리로 꾸중을 할 정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경사스러운 날이어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얼마나 타들어가랴 싶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북한과의 힘겨운 기싸움을 홀로 치러내며 두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방북 길에 오르는 심경이 오죽할까.
현 회장의 그런 심기를 알기에 대북사업에 관한 질문은 하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던 기자들이 마침내 식이 끝날 무렵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다. 현 회장은 "오랫만의 방북이라 걱정되지만 금강산은 잘될 것 같다"며 "개성, 백두산 문제도 논의대상"이라고 말했다.
짧은 질문과 간단한 답변이 오갔지만 현 회장은 초조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듯 한마디 한마디를 건넬 때마다 입술을 지긋이 깨물기를 반복했다. 질문 도중 지방 주재기자들이 느닷없이 명명식이 처음이냐고 묻자 "결혼하기 전 (고 정몽헌 회장이) 군대에 있을 때 와 본적이 있다"고 답하고는 돌연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두 달여동안 현회장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도 '뜨거운 감자'로 여기는 북한을 상대로 꿋꿋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해 왔다. 이날 현 회장은 기자들에게 "걱정됩니다. 좀 도와주세요"라고 소탈한 부탁을 덧붙였다. 대북사업의 미래에 방점을 찍을 만한 협상을 위해 방북하는 현회장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