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이상 환율 하락분을 버티기가 힘듭니다. 이번 출장에서 환율 하락분 10%를 가격 인상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네덜란드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류강국' 네덜란드의 경쟁력을 취재하기 위해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중소기업 D사의 L 사장의 말이다.
L사장은 부산 신평동에서 초소형전구 하나로 30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본사 18명과 베트남 생산법인에 120여명을 거느린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다. 그러나 L사장의 좌석은 퍼스트 클래스나 비지니스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 클래스였다.
통상 날씨와 여행지 정보 등 가벼운 신변잡기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L사장과의 대화는 처음부터 무겁게 시작했다. L사장은 최근 환율 하락으로 지난 20년간 거래해 왔던 현지 유통업체 A사와 최종 담판을 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찾았던 것.
일본으로부터 초소형전구 관련 기술을 도입한 D사는 국내에서 이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베트남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한때 현지법인의 임직원이 5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2~3년 전부터 불어닥친 경기 악화와 지난해 연말부터 급격히 하락한 환율 하락은 L사장에게 '회사 정리'를 강요하고 있다.
"최소 달러당 1000원 이상은 돼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 L사장의 설명이다.
"예전 같으면 A사가 1년에 최소 1~2회씩 한국을 찾아와 안정적인 물량 공급을 요청했지만, 중국 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든 이후에는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현재의 위기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저가공세가 최근 더 거세지면서 가격 인하까지 강요하고 있어 더 이상 출혈수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L사장의 설명이다.
L사장은 "최근 환율 수준이면 중소기업 10곳 중 7~8곳은 적자"라며 "한번 시장에서 출수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적자수출도 감수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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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가격 10% 인상안을 관철하겠다는 L사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만약 실패하면 이번 네덜란드 출장을 끝으로 임직원들에게 생산설비와 거래처, 경영노하우 등을 모두 무상양도하고 업계를 떠나겠다는 생각이다.
"작은 사업이지만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며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봉급쟁이 생활이 더 편할 것 같아 그 생각을 접었다"고 L사장은 토로했다.
"기자 양반,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길이 뭡니까." L사장의 말이 아직도 머리 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