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병 발표 후 설명회에서도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고 합병 이후 장밋빛 청사진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사채권자들의 요구에는 귀를 닫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 합병 발표 후 설명회에 참석한 투자자)
"분위기가 좋았다. 동부한농이 제시한 사채권자 이익 보호안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담보를 받는 게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사상 처음으로 무보증채권이 투자자 보호를 받아 담보부채권으로 바뀌었다. 투자자 보호의 이정표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24일 여의도 한화증권에서 열린 동부한농 사채권자 집회에 참석한 투자자)
두 사람의 말에서 드러나듯 회사채시장이 보는 동부그룹의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이날 서울 여의도 한화증권에서 진행된 사채권자 집회는 동부그룹이 지난 주말 1710억원의 담보 제공 의사를 미리 밝힌 탓에 사채권자들이 합병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얘기가 잘됐다". 모자라는 담보를 계열사 주식까지 더 내놓은 동부의 성의에 투자자들이 화답한 것이다.
지난 2월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의 합병 발표 직후만해도 동부는 회사채시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했다. 우량회사와 부실회사가 합치는 데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합병 직전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전후 과정에서 투자자들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고압적으로 나오는 동부에 사채권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공모 사채권자 대부분이 합병 반대에 뜻을 모았고, 동부 회사채는 사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시장의 압력에 결국 동부는 변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시장에 순응해 공존하는 쪽을 택했다. 시장은 동부의 약속에 다시 한번 신뢰를 보냈다.
아쉽게도 이같은 사례는 아직 흔하지 않다. 목적 달성을 위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감수토록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시장에서 신뢰를 잃으면 위기에 처할 때 손을 내밀 곳이 없다는 걸 왜 그리도 자각하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