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채권거래 후진국

[기자수첩]채권거래 후진국

전병윤 기자
2007.05.16 10:02

주식펀드매니저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살핀 뒤 장이 시작되면 지수의 현란한 움직임을 보며 주식 매매를 시작한다. 같은 시간 채권펀드매니저는 특정 회사의 메신저에 로그인하고 채권 매매에 나설 채비를 한다.

시가 총액 780조원에 달하는 채권시장의 현 주소다. 주식시장은 증권선물거래소라는 공인된 시장을 통해 전산으로 주식을 사고 팔수 있지만 채권시장은 장외에서 거래돼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장면이다. 자본시장에서 주식시장과 양대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채권시장은 후진적 시스템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15일 회사채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관련업계가 머리를 맞댄 국회 금융정책연구회 세미나에서 채권 펀드매니저의 자조 섞인 탄식이 이런 현실을 반영했다. 이도윤 한국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채권시장은 특정 회사의 메신저를 통해 거래되고 있어 출근하자 마자 메신저 켜기에 바쁘다"며 "거래하다보면 이 회사 메신저가 '불통'이 될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 모든 채권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진다"고 탄식했다. 채권시장 활성화는 차치하더라도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서 전산 거래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개혁'을 외치면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채권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기존 참여자들이 고루한 채권거래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폐쇄적 시장에서 이미 정보와 거래처를 확보한 증권사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 기득권을 가진 곳이 열린 시장보다 갇힌 시장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고사 위기에 몰려 있다고 한다. 위험을 떠안지 않으려고 하는 투자자들이 우량 기업의 채권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회사채시장은 우량기업의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 지 오래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자금줄이 끊기는 건 당연한 결과다.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어 장기 자금 조달을 가능케하고, 자금의 선순환 뿐 아니라 채권투자의 수익을 높여 채권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채권거래를 손보지 않고 안된다. 10년전에도 있을법하지 않은 메신저 거래를 유지하고 있는 폐쇄적 시장을 여러 이유로 고치지 않은채 채권시장을 살리려고 하는 것은 공허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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