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독립성 '쉽지 않은 과제'

사외이사 독립성 '쉽지 않은 과제'

강기택 기자
2007.07.05 09:14

[사외이사 다시보기-中]

2002년 4월30일.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는 마이크론과 합의한 매각 MOU에 대해 만장일치로 반대의견을 표시했다. 전체 매출액 중 90%를 차지하는 메모리 부문을 팔고 남은 잔존법인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잔존법인의 매출이 기껏해야 8000억원인데 부채를 3조원 가량 떠안는다는 것은 '기업을 죽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이사회는 반도체시장 여건의 호전, 신기술 개발에 따른 경쟁력 향상 등을 감안해 독자생존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처럼 하이닉스 매각을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사회 멤버 중 7명은 사외이사였다. 이들 대부분은 대주주인 채권단과 정부가 추천한 사외이사들로 소신대로 매각을 반대했다가 곧바로 채권단에 의해 전원 교체됐다.

그러나 하이닉스 이사회의 결정은 사외이사들이 본연의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이닉스는 극적으로 회생해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1조7000억원~2조원대의 순익을 내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사외이사들의 의사결정 하나가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기업을 되살려 놓은 셈이다. 이는 또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립 운운 하던 정부가 정작 채권단을 통해 하이닉스 이사를 전원 교체하는 극약처방을 동원, 스스로 제도의 취지를 저버린 사례이기도 했다.

사외이사들의 '반란(?)'은 계속 되고 있다. 최근의 SKT 사외이사들이 에이디칩스 인수를 거부한 것에 앞서 SK㈜ 사외이사들이 2004년 기자재 매각 후 재리스 안건을 부결시켰고, 포스코 사외이사들은 지난해말 임원장기성과급제에 대해 사외이사 전원이 거부했다.

SK㈜와 포스코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어 당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는 "사외이사들이 토론 끝에 기업가치 증대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해 부결시켰던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사외이사들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이닉스의 경우 2003년까지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매각에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들이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SKT의 사외이사들의 결정도 추후 어떤 역효과를 가져올지 예단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의 사외이사는 "이사회 안건에 반대하면 독립성이 있고 찬성하면 거수기라는 식의 이분법은 지양돼야 한다"며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충분한 설득과 조율과정을 통해 사외이사제도가 성숙하게 운영되면 찬성율도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현실에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명실상부하게 운영하는 삼성, SK, 포스코 등이 있기는 하나 사외이사 추천과정에서 CEO나 대주주 특수관계인 등 이미 독립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인사들이 선임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사회 구성원이 9명인 외환은행의 경우 엘리스 쇼트, 마이클 톰슨, 유회원 씨 등 3명의 사외이사가 론스타 계열사 임원으로 특수관계인이다. 따라서 사내이사 3명과 함께 총 6명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어 사외이사의 독립성 요건에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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