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은퇴 20년여만에 현역에 복귀했다. 1987년 경기 침체의 책임을 지고 거의 강판당한 그가 오바마 차기정부의 모든 경제회생 프로그램을 조율할 경제회복위원회(ERAB) 위원장으로 명예롭게 금의환향한 것이다.
ERAB 의장은 오바마 차기 정부 경제 핵심 포스트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금융위기 해결은 재무장관에 내정된 티모시 가이스너 현 뉴욕 연방은행 총재가, 경기부양은 대통령 직속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에 정해진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경제 개혁정책은 ERAB의 볼커 위원장이 각기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80세 경제 원로인 볼커 위원장은 또 서머스와 함께 오바마 경제팀의 젊은 피들을 이끄는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경제팀에는 오스탄 굴스비 교수(39), 피터 오스잭(39, 백악관 예산처장 지명), 제이슨 퍼먼(38, 수석경제보좌관 유력) 등 30대 혁신적인 신예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볼커 위원장의 복귀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그가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전임자라는 점이다.
1979년 FRB 의장에 오른 볼커는 임기 초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통화긴축 정책을 폈다.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대목이다. 당시 볼커는 통화 긴축책이 침체를 야기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87년 바통을 이어받은 그린스펀은 그와 정반대의 정책을 폈다. 사실 그린스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취임 두달만에 닥친 블랙먼데이(1987년 10월17일)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대형 악재들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6년 은퇴까지 18년간 장기 집권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임기 후반 택한 저금리정책에 발목 잡혔다. 닷컴버블 극복을 위해 선택한 저금리정책은 이후 부동산 버블로 번졌고 급기야 지난해 현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서브프라임 사태는 터졌다.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우던 그는 요즘 '죄인 심정' 이다. 위기의 주범중 한 명으로 꼽힌 그린스펀에 대해 날카로운 이빨을 여지없이 드러내온 미 언론들은 볼커에 대해서는 '그가 옳았다'며 연신 치켜 세우기 바쁘다.
또다시 뒤바뀐 두 사람의 운명을 보며 인간사 새옹지마를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