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나가 분투하는 기업 발목 잡나...구조조정 남용 아닌가

최근 현대그룹과 채권은행의 실랑이를 보면서 "이러다 멀쩡한 기업 하나 잡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채권은행단은 최근 현대그룹에게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란 '부실 경영의 우려가 있는 대기업 그룹이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채권단과 맺는 양해각서'이다. 약정을 일단 맺으면 비주력 계열사 매각·부실 계열사 정리·부채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을 해야한다. 실행하지 못하면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중단 될 수 있다.
현대그룹은 억울해한다. 욕심을 내 잔뜩 빚을 내다 사업을 벌려놓은 것도 아니다. 주력기업인현대상선(20,050원 ▼100 -0.5%)이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일시적으로 업황이 나빠 손실을 냈다. 그렇다고 '불량 기업'임을 인정하고 각서를 쓰라니 당혹스럽다는 얘기다. 더욱이 올해 경기가 회복되면서 1분기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는데도 감안해주지 않는다.
영업 잘해서 얼른 졸업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할 일이 아니다. 독감 걸렸다가 나으려고 하는데 신종플루 환자 대기소에 집어넣는 꼴이다. 최근 해운 시황이 살아나고 있는 와중에서 대외 신인도 하락, 조달금리 상승, 브랜드 및 기업 이미지 손상 등 치명적인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다.
현대상선측은 "프랑스 CMA-CGM, 독일 하팍로이드, 칠레 CSAV, 중국 코스코 등이 정부 지원을 받아 선복량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불량기업으로 낙인 찍어 손발을 묶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제도가 남용되고 있지 않은지 재고해봐야 한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은 일종의 조기경보시스템이다. 대기업 집단이 부실화돼 금융시스템에 위기를 초래, 국가적 문제로 커질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이 제도는 특정 기업을 '불량기업'으로 낙인찍어 상거래 및 금융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한번 찍힌 '부실'의 낙인은 진드기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내부 임직원들도 의기소침해질 뿐 아니라 거래 기업들이 꺼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경쟁사들은 마케팅에 활용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구조 개선 약정제도가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 시스템 위기로 번져 국가 재정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동원해야 한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온 산을 다 태울 것 같으면 작은 불을 놓는 방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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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스템 리스크로 커질 사안이 아니면 금융시장에 맡겨 둬야 한다. 시장에도 얼마든지 신용도에 따라 기업이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현대그룹 사안이 과연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정도인가 묻고 싶다.
소나기를 맞아서 옷이 젖은 사람과 허약체질로 땀에 옷이 젖는 사람에 대한 처방은 달라야 한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글로벌 위기를 맞아 매출 6조11154억원, 영업손실 5654억원, 당기순손실 8018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8년엔 6769억원, 2007년 1773억원 등 순이익을 내온 기업이다. 구조적으로 부실이 쌓여온 기업이 아니다.
하필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은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이다. 이 은행은 하이닉스의 주채권은행이기도 하다. 하이닉스는 채권은행에 발목이 잡혀 투자를 제대로 못해 세계 2위 자리를 일본 엘피다에 내줄 판이다.
기업이 잘못되면 가장 큰 손실을 입는 것은 다름 아닌 기업주다. 그럼에도 기업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상과 신념을 가져야 성장할 수 있다. 기업의 기를 업(Up)시켜주지는 못할 망정 해외시장에 나가 경쟁하고 있는 와중에 올가미를 씌우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