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공시읽기 16-자사주 소각]
2010년 6월 7일, 대한유화의 주가는 장 시작과 함께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15개월만의 상한가였다. 대한화유가 대표적인 자산주로 변동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대한유화의 주가가 상한가로 직행한 것은 전날 장 마감이후 파격적인 자사주 소각(이익소각)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주주이익환원 차원에서 952억원을 들여 보통주 170만주를 소각키로 한 것. 이는 총 발행주식 수 820만주의 20.7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자사주 소각 발표 직전 4만3000원이었던 대한유화 주가는 자사주 취득기간 동안 5만5000원대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정작 자사주를 소각키로 한 날(7월 1일)이 되자 주가는 6% 이상 떨어졌고, 이후 5만1000원대까지 하락했다. 이익소각 효과가 사라지자 주가도 힘이 빠지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돈 없으면 '그림의 떡'
회사 돈으로 주식을 사서 태워 없애는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주가관리를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요즘은 실물 주식이 발행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처럼 실제로 주식을 태우는 일은 거의 없다).
자사주 소각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이었지만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00년 초 새한정기(다함이텍의 옛 이름)가 처음이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벗어나 우량 기업들의 실적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주가는 이미 상승세를 접고 하락기로 접어들었다.
굴러들어 오는 돈을 주체할 곳이 없던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이 돈으로 주가를 올려 볼까를 고민하던 중 발견한 것이 바로 미국에서 흔히 행해지던 자사주 소각이었다. 1999년 주가 급등기에 천문학적으로 이루어진 증자를 통해 크게 늘어난 주식을 다시 사서 없애는 '결자해지'였던 셈이다.
물론 자사주 소각은 아무 기업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유화처럼 주식을 사들일 만 한 돈이 있는 기업에 해당되는 말이다. 수차례에 걸쳐 관련 규정이 대폭 간소화돼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예는 점차 늘고 있지만 재무구조가 튼튼하지 못한 기업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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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변동 없어 '착시효과' 주의
새한정기가 자사주를 소각할 당시만 해도 자사주를 사들여 태우려면 감자(자본감소)와 마찬가지로 주총에서 전체 주주의 3분의1 이상과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특별결의를 거쳐야 했다. 또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사채권자 집회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했고 적법성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침체되면서 기업들의 효과적인 주가관리를 위해서 정부가 여러 차례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2001년 4월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이후로는 회사 정관에 이익소각 규정을 미리 명시해 둘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소각할 수 있게 됐다.
이익소각이란 배당 가능한 이익으로 주식을 사들여 소각하는 것을 말한다. 소각을 목적으로 한다 하더라도 일단은 자사주 매입에 해당하기 때문에 소각 가능한 주식의 수와 금액은 자사주 취득한도 즉, 배당가능이익과 같다. 또 하루에 사들일 수 있는 주식 수와 매입방법, 매수가격도 자사주 매입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자사주 매입기간은 이사회 결의 후 그해 정기주총이 열리기전까지며 소각 역시 정기주총전까지 이행해야 한다.
부실기업이 감자를 실시하기 위해 소각을 하는 경우와 구분하기 위해서 공시에는 이익소각이라고 명기한다. 단, 이미 주가 안정을 목적으로 보유 중인 자사주가 아니라 애초부터 자사주 매입 목적을 주식소각으로 밝힌 경우에만 소각이 가능하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수는 감소하지만 납입자본금은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이익소각을 실시한 기업은 '주식 수*액면가=납입자본금'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 사실을 모르고 단순히 납입자본금을 기초로 주당순이익(EPS) 등 투자지표를 계산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사주 소각 효과는 ?
자사주를 소각하면 일반 자사주 매입과 달리 매입한 주식이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물량이 다시 쏟아질 우려도 없다. 그만큼 주가부양 효과가 확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자사주 소각 발표이후 단기적인 주가 상승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올 들어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11개 상장사(코스피 5개, 코스닥 7개)중신흥(13,810원 ▲50 +0.36%),S&T홀딩스(63,000원 ▲300 +0.48%),정상제이엘에스(5,790원 ▼30 -0.52%),다산네트웍스(5,150원 ▼220 -4.1%),다음(48,650원 ▼400 -0.82%),이크레더블(14,970원 ▼10 -0.07%),인화정공(50,700원 ▼1,700 -3.24%)등 7곳은 자사주 소각 공시이후 10일간 짧게는 1~2일, 길게는 4~5일 연속 주가가 올랐다.
자사주 소각은 또 일반 자사주 매입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팔자 물량을 흡수해 주는 안전판 역할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울러 배당금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가 상승이 이루어질 경우 세금이 면제되기 때문에 주주에게 더 유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우선 배당 가능한 이익을 자사주 매입에 썼기 때문에 자기자본이 감소하게 돼 부채비율(부채/자기자본)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무리하게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오히려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또 이미 유동 주식 수가 적은 기업이 주식을 추가로 소각할 경우 유동성의 제약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에 들어간 돈은 소각이 없었더라도 배당금이나 재투자 자금의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돈이기 때문에 주주 입장에서는 '조삼모사'나 마찬가지라는 시각도 있다. 주식 수가 줄어들더라도 배당금 총액이 감소했기 때문에 한 주당 예상되는 배당금에는 차이가 없어진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