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위기의 '악령'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서히 봉합되고 있다고 믿었던 그리스 사태가 이번에는 이탈리아 은행권 불안으로 확산되며 뒤통수를 쳤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달말 그리스 의회에서 긴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구제금융과 추가지원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증시의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며칠새 시장에서는 그리스 재정위기가 이미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악의 경우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와 함께 유로존 전체가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에 놀란 증시, 하루만에 '풀썩'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4일 코스피 지수는 34포인트 반등해 2090선 돌파에 성공했다.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과 5년 기한의 긴축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외국인이 '사자'로 돌아서고 기관이 5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하는 등 투자심리가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반등 하루만에 기세가 꺾였다. 지난주말 이탈리아 은행권이 일시적인 거래중단으로 자본부족 우려를 낳으면서 그리스 리스크가 이미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27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0.52포인트(0.98%) 밀린 2070.29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1060억원을 되팔았지만 기관과 개인이 각각 2208억원, 3973억원을 사들이며 2070선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이탈리아는 최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정치적 입지약화로 재정수지 적자축소가 차질을 빚으면서 위험지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탈리아 16개 은행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검토하고 13개 은행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우려가 증폭됐다.
이탈리아가 흔들리면서 그리스 사태가 스페인 등 주변국으로 확산, 유로존 전반의 신용수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스 사태가 고비마다 접점을 찾지 못하고 확산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에 충격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자들의 PICK!
"최악의 경우엔 금융위기보다 심각"
일단 증권가에서는 그리스 사태가 재정취약국인 PIGS(포루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를 비롯해 유로존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유로존 전반이 위험에 처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그리스 디폴트를 시작으로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되면 글로벌 증시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유럽은행들은 자본규제상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로 발행한 국채를 '무위험자산'으로 취급,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PIGS 국가의 채권을 대거 사들인 바 있다.
이들 은행은 PIGS 국가의 채권을 무위험자산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충당금을 확보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가 향후 채무재조정에 직면하면 충당금이 부족한 은행들은 동반 부실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유로존 은행들이 동반 부실에 처하고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로 전염되면 미국 등 선진시장뿐 아니라 신흥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지게 된다.
우선 은행들은 충당금을 쌓기 위해 해외자산을 매각하고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선진시장, 신흥시장 가릴 것 없이 유럽계 자금뿐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 전반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증시가 '조정' 수준을 넘어 폭락할 수밖에 없다.
은행권은 또 전면적인 디레버리징(대출상황)에 나서는 동시에 대출을 옥죄기 시작할 것이다. 경기침체로 수출이 여의치 않아지고 금리는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생존을 고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증권가에서는 최악의 경우 '유럽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되면 충격은 지난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서는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리먼 브라더스 등 일부 기업의 부도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국가의 부도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
고유선 대우증권 거시경제분석팀장은 "올해 그리스 문제에 이어 내년에는 먼저 구제금융을 받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도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유로존 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번질 경우 지난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채권규모를 넘어서는 충격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분석팀장도 "그리스가 무너지면 이탈리아, 스페인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독일, 프랑스는 물론 미국이 타격을 입으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며 "유럽발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자금이탈과 수출경기 급랭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