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반대 10%p 증가…이사 책임축소·장기연임 반대에 기업들 노심초사

올해 주총시즌이 본격적으로 개막한 가운데 '증시 큰손'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쟁점 의안에 과감히 반대표를 던지고 이사와 감사의 무리한 선임에도 제동을 걸면서 주총을 앞둔 상장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주 권익의 침해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총서 반대비율 10%p 높아져=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 들어 지난 2일까지 소집된 26개 국내 상장사 주총에서 총 96건의 의안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중 반대표를 던진 의안은 14건으로 의결권 행사 대비 반대 비율은 14.58%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8개 상장사 주총에서 74건 중 3건(4.05%)에 반대한 것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또 지난해 상반기 반대 비율 5.49%의 약 3배에 달한다. 단순 수치 비교지만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국민연금은 이 기간 정관변경 9건, 이사선임 3건, 감사선임 3건에 반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넥센타이어의 사채 발행 한도 확대 정관변경과 일신방직의 장기재임 감사 선임, 배당을 실시하지 않은 SBS미디어홀딩스의 재무제표승인에 반대했다.
올 들어서는 주로 상법 개정에 따라 의안으로 올라온 △사채 발행 권한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위임 △재무제표 승인 권한을 주총에서 이사회로 위임 등 정관변경안이 국민연금에 퇴짜를 맞았다.
넥센타이어(8,980원 ▼410 -4.37%),이마트(105,000원 ▼1,400 -1.32%),오뚜기(397,500원 ▼1,500 -0.38%),신세계(368,500원 ▲8,500 +2.36%),광주신세계(39,050원 ▼500 -1.26%),신세계인터내셔날(13,290원 ▲740 +5.9%)등이 이 경우에 해당됐다. 국민연금은 의결 주체가 변경돼 주주권리가 희석됐다고 반대 이유를 들었다.
세방(15,810원 ▼410 -2.53%)과세방전지(68,900원 ▼2,700 -3.77%)는 의결주체 변경 조항은 물론 이사 책임을 최근 1년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 3배) 이하로 제한하는 조항까지 신설해 정관변경안을 올렸다가 국민연금에서 반대표를 받았다.
국민연금은 또 장기 연임하거나 겸직이 심한 이사와 감사의 선임에도 제동을 걸었다. 세방그룹 이의순 회장과 이 회장 장남 이상웅 부회장이 세방과 세방전지의 이사로 선임되는데 대해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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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농우바이오에서 2000년부터 감사직을 지낸 서정관 감사의 재선임과 영풍정밀의 황규종 이사 선임에도 재임기간이 매우 길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장기연임, 출석률 저조, 독립성 부족에 해당되는 이사와 감사 선임에 줄곧 반대해 왔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법에서는 허용이 되더라도 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지를 기업들이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법 개정 사항을 반영해 정관변경을 하더라도 주주권익의 침해를 최소할 수 있는 보완책을 기업들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원안대로 가도될까요" 눈치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주총 소집 공고를 낸 500여 상장사 중 190여개사가 이사 책임 축소 조항을, 또 160여개사가 재무제표 승인 위임 조항을 포함한 정관변경안을 올렸다.
이 가운데 대림산업은 주총을 앞두고 갑작스레 정관변경안에 이사 책임 축소 조항을 삭제해 정정 공시했다. 이는 국민연금과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의 반대 입장을 미리 확인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풍산도 대림산업의 행보를 뒤따랐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지분구조에 따라 온도차가 있다. 대주주 지분이 확고한 한 상장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의사 결정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기존 방안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총을 코앞에 둔 또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큰 고민이 되고 있지만 원안대로 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림산업처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국민연금, 외국인 기관투자자 등의 지분 합계보다 적은 기업의 경우 마음을 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의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더라도 논란과 갈등에 주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대림산업은 주총을 앞두고 외국인 기관투자자 측이 정관변경안에 반대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연금에도 의향을 물어 반대 입장을 확인하고 주총 표 대결에서의 패배를 우려해 의안을 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업들이 주주 권익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며 "주주는 물론 회사에도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