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승진자 임직원 오찬 "삼성은 여성이 능력발휘해 잘된다"
"빨리 부장도 되고 상무도 돼야죠.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일 삼성전자의 한 여성 간부에게 임원될 날을 잊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주위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회장의 '새벽 출근'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삼성에 이같은 웃음꽃을 선사한 것은 여성 임직원들이었다. 이날 이 회장과 오찬을 함께한 여성 임직원들은 특유의 솔직 발랄함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에도 여성 임원과 간부들을 오찬에 초청해 여성으로서 직장 생활에서 겪는 고충과 개선사항, 성공 노하우까지 귀를 기울였다. 이날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자리에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동석해 여성 경영인으로서 이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이날 이 회장이 가장 질문을 많이 던지고 관심을 보인 사람은 고졸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차장으로 승진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간부였다는 전언이다. 그는 생산라인 현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결과 학력의 벽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재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라인 공정을 원활하게 운영해 글로벌 톱 제품에 공급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여성이라는 차별에다 학력의 불리함까지 넘어야 했던 고졸 여성 차장의 말에 이 회장은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듣다가 돌연 승진 이야기를 꺼냈다. 차장에서 멈추지 말고 "부장도 되고 상무도 돼" 더 많은 고졸 생산직 여사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닦으란 의미에서다. "기억하겠다"는 덧붙임은 격려이자 책임감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했다.
이에 이 여성 차장은 "안 그래도 후배들이 빨리 임원이 돼서 우리(고졸 여사원) 입장을 잘 전해달라고 응원해줬다"고 답했다.
참석자들은 여성 직장인으로서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가장 도움이 된 것으로 직장 내 보육시설을 꼽았다. 아이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한 상무는 "회장님이 지난해 여성도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걸 아들이 신문에서 보고 '그럼 엄마도 곧 임원되겠다'고 말했는데 정말 임원승진을 해서 아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참 든든하겠다"는 말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운영되는 보육시설에 미비한 점을 없는지, 보육교사와 프로그램, 비용 등을 하나하나 따져 물으며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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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더 많은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회장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보육시설을 만든 것이라며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여성 비중을 더욱 중시하겠다는 소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여성에겐 남성은 갖지 못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청난 힘이 있다"며 "남성들에게 회사와 육아, 가사를 모두 하라고 하면 나부터 도망갈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다른 참석자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교수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업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며 "특히 삼성을 다니셨던 아버지를 통해 여성 인력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란 걸 알았기에 삼성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도 유학 마치고 삼성으로 왔는데 다 내 영향"이라고 자랑하듯 말해 참석자들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특히 이 회장은 "삼성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잘 된 것"이라며 "더 나아가 여성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국가적인 손해"라고 표현하면서 여성 인력에 대한 애정을 한껏 나타냈다.
그러면서 "현재 30% 정도의 여성 비율을 더 높여 나갈 것"이라며 "주위의 우수한 후배들에게 삼성 와서 일하라고 해라.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성 인재에 대한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이날 오찬에서는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대화가 오갔다고 삼성 측은 전했다. 참석자들이 상사의 별명에 대한 에피소드도 거침없이 꺼내 이 회장이 무척 재밌어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간부들은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기도 했다.
남성 임직원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회장님과의 이벤트'는 오찬이 끝나고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이 이건희 회장과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자 이부진 사장이 오찬장 문을 나선 이 회장을 다시 모시고 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