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로 본 농산물 유통]수십억 굴리며 밭떼기로 산지물량 싹쓸이, 가격 쥐락펴락

2010년 '배추파동' 당시 가격이 급등하며 음식점들이 메뉴판에서 김치찌개를 떼고, 김치반찬을 추가해도 돈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대관령 등 지역의 고랭지배추 출하가 감소한 것이 계기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줄어든 도매시장 반입물량은 18%에 불과했는데 정작 가격은 3배 이상 폭등했다.
2008년 9~10월 배추 1포기 가격(소매가격, 上品)은 1974~2780원에서 형성됐고 이듬해에는 2706~3092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0년에는 1포기 값이 7021~1만349원으로 폭등했다. 당시 농협 하나로클럽(양재점)에서는 1만3800원을 줘야 배추를 살 수 있었다.
배추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으나 대형 산지유통상을 일컫는 은어인 이른바 '오대상인'이 개입돼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이 유통가, 학계, 도매시장 납품농가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오대'는 '큰 손' 또는 '거액매매자'를 일컫는 일본어 오오테(おおて)에서 비롯된 말인데 농산물 시장에선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가격이나 물량이 크게 출렁인다.
◇수십억 굴리며 산지물량 70~90% 밭떼기하는 그들은
오대의 실체나 숫자, 규모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대형 유통체인 채소구매담당자,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납품농가, 유통 전문학자 등을 취재한 결과 이들은 최소 수십억원을 굴리며, 밭떼기(포전매매) 형식으로 농산물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추의 경우 오대를 비롯해 중간상인까지 포함해 밭떼기 물량이 전체 재배면적의 70~90%에 달한다는 게 취재에 응한 사람 전언이다.
농가는 배추를 심기만 할 뿐 어떤 품종을 파종할지부터 생산, 수확일정과 도매시장 납품계획 등은 밭떼기 상인이 맡는다. 나름대로 시세 전망을 토대로 배추 생산을 계획하고 확보된 물량으로 '한몫(?)'을 노리는 기획상인인 셈이다.
이들은 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수확을 늦추고, 가격이 더 오르길 기다린다. 영향력이 큰 오대가 먼저 움직이고, 중소상은 눈치를 보며 따라온다고 한다. 오대의 일을 위탁받는 중간상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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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오대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면 물량을 내놓는 쪽이 생겨서 시장이 진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한 번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폭등·폭락이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이는 주식시장에서 급등주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공급이 여의치않은 농산물은 주식보다 2~3배 진폭이 생긴다.
2010년에는 폭우로 인해 고랭지배추 생산물량 30% 가량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오대들의 출하가 미뤄졌고 여기에 일반 농민까지 가세하며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소비자들은 장바구니에 배추를 담지 않았으나 매일 공급해야 할 물량이 있는 김치공장과 급식업체, 음식점 등의 사정은 달랐다. 업체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소매상들도 상황이 다급해졌다.
이들이 배추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 둘 가격을 높여 부르기 시작하자 매일같이 경매가격이 치솟았다. 이후 공급물량은 계속 줄었고 배추는 결국 포기에 1만원이 넘는 금값이 됐다.
◇배추는 김치공장과 급식, 식당수요가 3분의2
배추는 가격등락이 심한 농산물이다. 대체로 3~4년 주기로 파동을 겪어왔다. 김치공장과 급식 등 일정한 수요가 항상 있는 반면 기후 등으로 작황 부침이 심하기 때문이다.
김장용 배추의 주된 소비자는 가정이 아니고 김치공장과 학교, 군대, 기업 구내식당, 음식점 등이다. 김장용 배추의 주소비자는 가정이 아니고 김치공장과 학교·군대·기업 구내식당, 음식점 등이다.
일반 소매업체와 대형마트가 배추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4.7%, 8.9%에 불과하다. 반면 김치 등 가공공장에서 쓰는 물량만 해도 33.3%에 달한다. 이들이 있으니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았던 것이다.
대형마트 야채담당 구매담당자(MD)는 "가격등락폭이 큰 엽근류의 경우 큰 손들이 도매시장 가격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게 사실"이라며 "2010년 배추파동 원인을 전적으로 오대상인에 묻긴 어렵지만 영향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대상인들도 밭떼기한 고랭지배추 생산 감소로 판매물량이 줄었으나, 이 보다는 가격이 올라 얻은 이익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 실장이 당시 배추 값 폭동의 원인으로 유통업자의 사재기를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배추는 정부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자 곧바로 급락했다. 그해 11월이 되자 전월보다 50% 가량 떨어졌고, 이듬해 1월에는 1350원으로 1/10토막이 났다. 중국산 배추수입 계획이 발표되고, 산지 유통상 세무 조사설이 돌자 물량이 확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