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계사는 전문직인 만큼 계약직 채용을 일반 회사와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EY한영이 2013년도 공인회계사 시험(CPA) 합격생 가운데 30명을 계약직으로 뽑은데 대해 내놓은 해명이다. 얼핏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전문직인 회계사는 개인의 역량이 중시되는 직종이니 여타 계약직보다 이직이 자유롭고 임금 차별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당장 EY한영의 설명은 구직활동을 하는 CPA 합격생들이 받아들이기에 가혹한 면이 있다. 2년간의 수습기간을 마친 정식 회계사는 계약직을 선호할 수도 있지만 합격생은 다르다. 수습기간도 마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불안감을 안고 지낼 수밖에 없다. 계약직들은 12월 회계법인의 감사가 집중돼 있는 연초에 잡무를 처리반으로 투입돼 전문성을 익히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벌순으로 정규직과 계약직을 갈랐다는 일각의 의혹은 뒷맛을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어느 학교까지 신입직원을 뽑을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EY한영의 계약직은 순위가 낮은 학교 출신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실제 5명의 CPA 합격자를 낸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경우 EY한영에 입사한 3명 모두가 계약직이었다. 반면 60-70명 이상의 합격생이 나온 상위권 학교는 계약직이 거의 없었다. 출신 학교가 절대기준은 아니지만 전문직 역시 학벌 차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더 큰 문제는 회계사의 계약직 채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계약직 채용의 이면에는 IFRS로 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누렸던 특수가 끝나면서 회계법인의 수익이 감소했다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4대 회계법인은 신규 채용을 25%이상 줄였지만 회계업계의 불황이 지속된다면 삼일·안진·삼정 등 다른 회계법인 역시 계약직 채용을 고려할 수 있다.
이번 논란으로 회계사라는 자격증이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과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만능이 아님을 확인해준다. 전문직까지 안정성을 위협받을 만큼 우리 노동시장이 취약해진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계약직 채용은 전문가에 대한 대우가 아닌 것 같다는 한 회계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