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증권사는 있어도 위기의 노조는 없다?

위기의 증권사는 있어도 위기의 노조는 없다?

김지민 기자
2013.12.17 07:40

[기자수첩]

오후 5시30분이 되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는 '딩동댕' 경고음이 쩌렁쩌렁 울린다. 직원들의 퇴근을 독려하는 메시지다. 지난 10월 취임한 최경수 이사장을 반대해온 노동조합이 정시퇴근을 알리기 위해 보내는 방송이다.

최 이사장의 선임을 반대해 온 노조는 거래소 1층 로비에서 3개월 넘게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다. 노조는 반대하던 최 이사장이 취임하자 거래소 임원들의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삼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노조는 거래소 일부 임원과 직원들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거래소 인근에 위치한 이웃사촌 현대증권도 노조 행보가 바쁘다. 증권업계에 강성으로 알려진 현대증권 노조는 최근 임원 수를 31명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사측과 고된 협상을 벌였다. 소송전도 한창이다. 2007년 이후 노조가 제기한 16건의 고소·고발 사건 가운데 11건이 검찰에서 기각됐고 5건이 계류 중이다.

직장인들은 자사 강성노조를 싫어하지 않는다. 사측과 임금과 복지 등 처우문제를 논의할 때 노조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여의도 전역에 구조조정이 거셀 때면 노조 입김이 센 증권사가 그나마 칼바람의 여파를 좀 더 잘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

직원들의 생존을 걸고 싸우는 노조는 하지만 회사와 직원들이 결국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거래소만 해도 임직원 대부분의 염원은 '공공기관 해제'이지만 노조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기자가 만나는 임원과 직원들은 누구나 거래소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공공기관에서 해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전 직원이 정말 공공기관 해제를 찬성하는지, 공공기관 해제 시 직원 입장에서 불리해지는 부분이 있는지, 해제를 바란다면 노조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노조가 총체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거래소 측에 전달하거나 심도 있는 토론을 제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대증권은 강성노조의 반대로 적자가 쌓여가는 지점들을 통폐합하거나 임금 및 복리후생을 전혀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매각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회사 운명이 큰 변화 속에 처해 있는데도 현대증권 노조는 그저 현상 유지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의 증권사는 있어도 위기의 노조는 없다는 말이 있다. 증권업계는 최악의 침체에 빠졌는데 노사관계는 여전히 과거 대치를 계속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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