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울산 현대중공업 원통형 FPSO 건조 현장 가보니

"우리 한국인은 모두 작심만 하면 뛰어난 정신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입니다."
1972년 3월 울산의 바닷가에서 열린 현대조선소 기공식. 아산 정주영은 한적한 어촌 마을에 들어서게 될 조선소의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던 임직원들에게 이같은 말로 용기를 북돋았다. 그 자신이 바로 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영국에서 선박을 수주한 도전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로 출발한현대중공업(362,500원 ▲4,000 +1.12%)은 당시 기공식이 있고 채 40년이 되지 않아 세계 1위 조선업체로 발돋움했다. 선박은 수년 동안 품목별 수출액 1위를 달리며 '수출한국'의 얼굴 역할을 했다. 글로벌 공급과잉과 원화가치 상승, 소비 위축 등 안팎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2014년 한국 경제도 이런 도전정신을 되새길 때다.
◇아산 정주영의 '도전정신' 흔적 가득한 조선소= 지난달 26일 기자가 찾아간 울산 전하동의 현대중공업 공장은 어촌마을의 한적함을 떠올리긴 힘들었지만 아산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공장 외벽은 아산이 평소 직원들에게 말했다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장식했다. 아산의 집무실과 작업복 등이 그대로 보존된 '아산기념전시실'도 이곳에 있다.
구진회 현대중공업 문화부 상무는 "2014년은 재무제표상으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임직원은 '아산정신'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새해 조선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 조선3사가 모두 수주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0∼50%까지 떨어진 가격에 수주한 선박들의 본격적인 건조·인도시점이 닥쳐서다. 조선업 선도업체인 현대중공업도 고용 유지에 필요한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IMF외환위기 때도 해고자 한명 없이 위기를 극복한 현대중공업은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이번 불황도 한 계단 더 성장하는 디딤판으로 삼고 있다. 본사와 조선사업본부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양사업본부에선 이런 도전정신이 현실화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만화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닮은, 공상과학 만화영화에나 나올 듯한 원통형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 건조 현장이 그것이다.
◇도전정신 현실화된 부유식 FPSO= FPSO는 바다에 뜬 채로 원유를 뽑아 정제한 뒤 저장까지 할 수 있는 설비다. 기존 선박 모양의 FPSO는 현대중공업이 시장의 60%를 점유했는데, 북해지역처럼 파도와 조류가 세고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서는 안전을 위해 원통형이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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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원통형 FPSO는 커 봐야 기껏 30만배럴을 저장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설중인 것은 한국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원유의 절반가량인 100만배럴의 저장용량을 자랑한다.
지름은 112m에 달하고 높이는 아파트 25층 정도인 75m다. 자체 중량만 5만3000톤이다. 한 척 가격이 20억달러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발주사인 노르웨이의 ENI노르게AS에 인도돼 노르웨이 북부 85㎞ 해상의 골리앗(Goliat) 유전에서 기름을 뽑아올릴 예정이다. 전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기에 지난해 말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열린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통형 FPSO 현장에는 하루 3200여명이 근무한다. 이들 근로자는 설비 외부에 임시로 설치된 엘리베이터 4개를 통해 수시로 오르내리면서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었다. 스웨덴 코컴스 말뫼조선소가 보유하다 현대중공업에 인도된 세계 최대 크레인 '말뫼의 눈물'도 동원돼 바쁘게 움직였다.
원통형으로 짓다보니 각종 배관과 케이블 등이 촘촘히 자리잡을 수밖에 없고 설계와 공사에 훨씬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는 게 현장 작업자들의 설명이다.

◇35년 베테랑이 신입 직원에 '도전정신' 전수= 이 현장에서 '도전정신'은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 프로젝트 관리는 유창식 PM(프로젝트매니저·60)이 맡고 있다. 대학졸업 후 2년간 독일어교사를 하다 1979년 입사한 그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한다. 회사가 독일기술 도입에 열을 올리던 때 실무현장에서 뛰었던 그는 현재 세계 최고 기술을 갖게 된 현대중공업의 산증인이다.
원통형 FPSO는 최고 베테랑인 그에게도 "회사생활 중 가장 어려운 공사"다. 그는 "그동안 엔지니어와 설계담당자들이 자기분야에 애착을 갖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듯이 도전정신으로 난관을 이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양설비의 모듈조립을 담당하는 정익진 기장(60) 역시 올해가 회사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다. 군복무를 마치고 25세 때인 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입사하고 6개월 동안은 잠을 자지 않다시피 하면서 도면을 보고 궁리할 정도로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우리가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기장과 함께 근무하는 이권우 기사(35)는 오랜 협력업체 근무를 마치고 지난해 현대중공업 정규직원이 된 경우. 그는 "현대중공업 안에서 인정받으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는 생각으로 배우고 있다"며 "특히 외국 선주사 감독관과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2014년에는 영어공부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로세스설계부의 김소라 대리(30)는 "공사를 신규수주하면 가장 먼저 바빠지는 곳이 설비 세부설계를 하는 우리 부서"라며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회사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국가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