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느 상속자의 삶

[기자수첩]어느 상속자의 삶

박준식 기자
2014.01.08 17:37

'상속자'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내용은 신데렐라 로맨스의 다른 변종이었던 듯한데, 부제는 의미심장하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랑은 중요하고 커다란 일이다. 재벌이라고 그런 문제가 편할 리가 없다. 까다로우면 더 까다롭겠지. 그런데 실제 우리나라 상속자들은 그와는 다른 문제로 많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업승계가 주된 이슈다.

우리 재벌들은 대부분 기업을 피붙이에게 물려주려 한다. 재산만 아니라 경영자로 회사를 더 키우기 원한다. 그래서 상속자들은 그들끼리 비교된다. 로맨스에 돈을 쓸 시간은 없고 좋은 학교를 가야하고 지체 없이 돌아와 회사에서 인정받으려 애쓴다.

경영에 신경 쓰기도 벅찰 텐데 요즘엔 행실도 조심해야 한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출퇴근할 때 오가는 시간을 아낀다고 고속도로 전용차로를 타다가 뭇매를 맞았다. 사람들은 이제 돈 많은 이들에겐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덕목을 요구한다. 사회 지도층이란 명분이다.

LIG그룹 구본상 부회장은 2006년 10월 회사에 들어왔다. 그전까지 다른 회사서 수업을 받다 부사장이 돼서는 곧바로 중책을 맡았다. 아버지 구자원 회장이 건영건설을 인수한 터라 이를 개선하는 게 그의 책임이었다. 그때 서른여덟이었다.

상속자였고 차기 오너였지만 회사에선 소탈하던 편이었다. 운전기사들과 밥을 먹고 동년배 과·차장은 물론 사원·대리들과 쉽게 어울렸다고 한다. 스스로 벽을 깨고 재벌 딱지를 떼 보려 노력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회사에 들어온 지 7년. 지난해 구본상 부회장은 법정 구속돼 감옥에 있다. 판결이 진행 중인데 18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을 지시한 혐의다. 30대 후반, 능력보다 큰 짐을 졌고 지속된 부동산 경기침체를 신출 경영자로 이기지 못한 죄다.

재벌의 그릇된 경영 행위나 결정, 피해자 문제를 간과할 생각은 없다. 관심은 어떤 상속자의 짐 많은 삶이다. 그는 학부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며 다른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가 상속자라는 거역 못할 운명을 따르다 영어의 몸이 된 게 유감이다. 상속자가 되어 기업을 승계한다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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