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적으로 독자신용등급 도입의 발판이 마련된 것 같다."
KT ENS 대출사기 사건 이후 채권시장에서 나오는 말이다. 지난해 떠들썩했던 STX·동양사태와 맞물려 KT ENS 사건이 외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기업 자체의 신용등급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강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KT ENS 대출사기 사건은 KT ENS의 협력업체 대표가 KT ENS 직원과 짜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 은행 등에서 1조8335억원을 빌린 뒤 2894억원을 갚지 않고 착복한 사건이다.
처음 사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 여파가 신용등급 제도로 향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업인KT(61,200원 ▲100 +0.16%)가 재무 지원 가능성을 일축하고 KT ENS가 지난 12일 만기 CP(기업어음)를 갚지 못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렀다.
KT ENS는 그동안 KT의 100% 자회사라는 점이 감안돼 자체 신용등급보다 한두단계 높은 A등급을 받아왔다. KT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신용등급은 BBB+ 정도였다는 게 신용평가업계의 설명이다.
KT의 지원 불가 방침 이후 신용평가사에서 KT를 포함한 KT 전 계열사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KT ENS 사례는 모회사가 재무적으로 곤경에 처한 자회사를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례가 자연스럽게 독자신용등급 도입 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신용평가사들이 모기업이나 정부의 후광 효과가 있는 기업에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주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제는 지원 여부를 100%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애기다.
독자신용등급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미뤄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동양사태에서 뻥튀기 신용등급 논란이 일자 내년부터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전문가들은 금감원의 결단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독자신용등급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회사채 시장 양극화가 '신용등급 인플레'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탓도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는 점에서 언제고 거쳐야할 문제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원 가능성이 배제된 실제 '생얼'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역할만으로도 시장 정상화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