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경험은 늙지 않는다

[우리가보는세상] 경험은 늙지 않는다

최석환 기자
2015.11.02 03: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최근 300만명 넘는 관객이 찾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인턴'의 부제로 쓰인 말이다. '경험은 늙지 않는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문구는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40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70살 노인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가 '어바웃 더 핏'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에 시니어 인턴으로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루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휘태커의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따뜻한 마음과 지혜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며 감동을 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휘태커는 자기소개서에 담은 이 말로 공감을 이끌어내며 인턴 취업의 기회를 얻게 된다. 잊고 있던 손수건의 용도를 알게 해준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휘태커'는 자신이 아닌 남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준비한 손수건으로 주변 사람들을 위로한다.

서두부터 영화 '인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알게 된 한 펀드매니저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는 동일권 대표다. 그는 직접 운용해온 '라자드코리아펀드'가 올해 독보적인 수익률로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펀드는 탁월한 성과로 입소문이 나면서 100억원에 그쳤던 설정액이 1000억원을 훨씬 넘어섰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 대표가 환갑을 넘긴 현직 펀드매니저라는 사실이다. 펀드매니저의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풍토로 보면 최고령급인 동 대표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역사(?)인 셈이다. 동 대표도 "은행이나 증권사로 직접 펀드 설명을 가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 금융선진국에선 오랜 시장 경험을 가진 60대 이상의 펀드매니저들이 수두룩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21세기 최고 펀드매니저’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1930년생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 대표도 "(해외에선)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면서 "조직과 일 중심의 한국 문화에선 노장급 매니저들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동 대표가 올해 거둔 운용 성과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연초부터 중소형주 강세장을 주도해온 용대리들과의 경쟁 속에서 얻어낸 결과여서다. 용대리는 올해 화장품과 바이오주 등 중소형주를 적극적으로 사들이면서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한 용감한 20~30대 대리·과장급 펀드매니저를 말한다. 탁월한 수익률을 거둔 용대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40대 이상의 고참 펀드매니저들 입지가 좁아진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용대리들이 운용하고 있는 펀드의 수익률도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전례 없는 하락장을 경험하지 못한 용대리들의 대응 능력에 의문이 쏟아지면서 경험 많은 펀드매니저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박영규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도 지난해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펀드매니저 경력이 길수록 운용성과가 우수하다"고 분석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전투에 쓰지 못한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 잃어버린 길을 찾은 뒤 군대를 살린 중국의 고사가 담긴 사자성어다. 투자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경험 많은 펀드매니저층이 두터워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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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환 기자

"위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던 셰익스피어의 말을 마음에 담고, '시(詩)처럼 사는 삶(Deep Life)'을 꿈꿉니다. 그리고 오늘밤도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 적어둔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란 글을 곱씹으며 잠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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