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햇수로 10년 전이다. 신동빈 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롯데 사태의 씨앗이 언론에 처음으로 드러난 그때가 말이다. 롯데 사태는 경영권 승계와 상속 과정의 편법과 롯데그룹 일가에 대한 그룹 차원의 부당지원으로 요약된다.
롯데그룹 수사과정에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렸던 신유미씨는 2007년 10월 당시 23세의 나이로 롯데의 식품계열사 롯데후레쉬델리카의 주식 35만주(9.3%)를 보유하게 됐다고 공시했다. 유미씨의 롯데그룹 계열사 주주 등재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유미씨는 신격호 회장과 서미경씨(현재는 검찰로부터 귀국을 종용받고 있음에도 일본 체류중)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당시 한주당 2560원으로 돈은 8억6000만원이 들어갔다.
아버지는 조 단위 부자라고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던 20대 초반 여성이 그런 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머니투데이를 시작으로 언론에서 유미씨의 주식 취득에 대해 ‘롯데 재산 분배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인 서미경씨의 재산 형성과 부의 축적에 대한 보도도 쏟아졌다. 롯데백화점 황금상권 식당가의 여러 음식점들이 서씨 소유 회사들과 관계가 밀접한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구속상태인 신영자 전 사장 회사들이 당시 롯데쇼핑 소유의 극장에 독점적으로 매점을 운영한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칼을 빼들었고 그해 12월 롯데쇼핑에 3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공정위는 "부당지원 행위로 롯데시네마의 수익이 감소했고 (대주주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에 대해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함으로써 총수 일가에 경제력이 집중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후로도 비리를 겨냥해 칼끝을 겨눌 수 있는 검찰, 탈세조사를 할 수 있는 국세청 등은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몇군데 롯데 계열사간 거래관계가 바뀌는데 그쳤다. 이번에 롯데그룹 오너일가 중 신영자씨만 구속된 것처럼 당시 신씨 소유의 회사와 롯데의 거래관계만 틀어졌다.
2008년 신유미씨는 롯데쇼핑 주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0월22일 롯데쇼핑 1690주를 사들인 것이다. 23세에서 한 살 더 먹은 정도의 변화였고 여전히 자금 출처는 불투명했다.
그룹도 승승장구했다. 그룹의 숙원이던 제2롯데월드도 이명박 대통령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분위기에서 ‘전투기 비행각도를 틀게 하면서까지’ 건축허가가 났다. 삼성쪽의 화학계열사(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부문)도 롯데가 인수했다. 롯데그룹 편의점 사업을 하는 코리아세븐은 또다른 편의점회사 바이더웨이를 사들였고 선불카드 사업도 시작했다.
대주주들 행보도 거침없었다. 비상장사 롯데후레시델리카는 롯데삼강(현재는 롯데푸드)와 합병했다. 현재 신유미씨는 롯데푸드 주주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뒤로 한 채 신동빈 회장은 ‘원(one) 롯데-원(one) 리더’로 지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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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그룹 내부적으로 형제간(신동주 전 부회장(신격호 회장의 장남)-신동빈 그룹 회장(차남)) 갈등이 불거졌지만 찻잔 속의 태풍처럼 보였다. 롯데가 움찔한 것은 압수수색 등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고 임원들이 줄소환되면서다.
롯데 계열사 편의점에서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알바)생들이 시급 6470원(최저임금)에 눈을 부비며 밤샘 근무를 한다. 본사와의 계약에 고개를 내젓는 가맹점주들도 많다. 극장의 매점에서도 환하게 미소짓지만 오랜 시간 서 있느라 퉁퉁 부은 다리에 힘들어하는 젊은 직원들이 많다. 때로는 부당한 고객들의 여러 요구에 ‘예, 고객님’을 되뇌지만 속으로 한숨짓는 백화점과 마트의 직원들도 여전하다.
젊은이들이 금수저.흙수저 운운하며, 헬조선이라며 자조하지 않도록 하는 건 기성세대와 국가와 위정자의 몫이다. 계약직 미생 장그래에게 완생이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줘야 하듯이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달래거나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의미하는 신조어)하라’라고 어르기에 앞서 희망의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법을 어긴 부(富)의 이전은 10년전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