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세계 인구 74억여명 중 한명의 죽음일 뿐이었다. 세계 230여개국 중 한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벌써 20여일이 지난 모로코의 생선장수 무흐친 피크리의 죽음 얘기다. 트럼프 당선이라는 이변(?)을 낳은 미국 대선 같은 숨가쁜 일정에 지나쳤다. 한명의 죽음이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태국 국왕 서거는 전세계가 주목했다.
피크리의 죽음은 비극 그 자체였다. 10월28일(현지시간) 피크리가 운영하던 노점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어종 보호 때문에 올해 판매가 금지된 황새치를 팔았다는 혐의였다. 경찰은 압수한 황새치 500㎏을 모두 쓰레기 수거트럭에 처넣었다. 피크리는 전 재산인 생선들을 건지려 트럭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쓰레기 분쇄기가 작동했고 그는 결국 숨졌다.
분쇄기 밖으로 머리와 팔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 피크리의 시신 사진이 소셜미디어로 퍼지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 시절에도 꿈쩍않았던 모로코에서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000여명이 “우리 모두가 피크리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피크리의 관을 따라 10㎞ 넘게 행진했다. 모로코 국왕 무함마드 6세가 내무장관을 보내 조의를 표했지만 분노는 식지 않았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끝 모로코와 다른 나라들의 이질감은 좁혀지지 않았다. 모로코에서도 북부 알호세이마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해 전세계 시민 모두가 울분을 삼켰지만 분노의 파동은 오래가지 못 했다. 생떼같은 젊은이의 그야말로 개죽음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미안함에 뉴스를 뒤져보았다.
11월 들어 해당 뉴스를 보도한 곳은 두 매체뿐이었다. 아일랜드 언론매체인 아이리쉬타임스(11월3일자)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언론사인 뉴스24(11월6일자)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아일랜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있다는 공감대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아이리쉬타임즈의 추가보도를 통해 피크리의 죽음과 관련해 11명이 체포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살인보다는 과실치사에 무게가 두어지고 피크리의 아버지도 “모로코 국민들은 개혁과 '안정'을 원한다”며 자의반타의반 누그러졌다고 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피크리에게 수백킬로의 황새치가 전재산이었듯이 그의 아버지도 낯선 저항보다는 순응의 익숙함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곤궁함이 읽혀졌다.
또다른 노점상의 죽음에서 촉발된 2011년 아랍의 시민운동은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 중동ㆍ북아프리카 전역으로 번지면서 철옹성처럼 보였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 리비아 카다피 정권까지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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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리의 참극이 있었던 모로코 도시와 9시간 시차가 나는 서울. 그곳에서는 매일 밤 촛불이 켜진다. 지난 12일 저녁에는 100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차벽에 가려진 산 중턱을 보고 한 사람에게 외친다. ‘이게 나라냐고. 어서 입장을 정하라고’.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양친을 모두 총탄에 잃은채 ‘사사로운 인연조차 끊고’ 나라와 결혼했다는 그는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장에서 외치며, 때로는 최루탄에, 때로는 물대포에 맞으며, 피흘리며 일궈낸 수십년간의 민주화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좌절감에 말이다. 공화국이 왕조 시대의 수렴청정 국가로 후퇴했다는 회한도 있다.
촛불은 겉불꽃과 속불꽃, 불꽃심으로 이뤄져있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지만 산소와 맞닿아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겉불꽃의 온도는 섭씨 1400 ~ 1500도에 달한다. 가장 안쪽 불꽃심은 그을음이 가장 많이 생겨 온도는 300∼400도 정도로 가장 낮다. 광장의 100만개 촛불은 겉불꽃일 뿐이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았을 뿐 실망감에 사로잡힌 4800만명의 눈물은 불꽃심 속 그을음이다. 그들의 뜨거운 눈물이 촛농처럼 떨어지고 있다. 희망과 자부심이 분쇄기속 잔해들처럼 짓이겨진채. 또다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