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먼 미래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모호하고 공허한 선언만 난무하는 모습이다." 지난 5일 발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한 산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지난 5일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2018년 기록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순배출량 기준 6억8630만톤) 대비 최소 97%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각종 방안을 내놨다. 발전(전환), 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 등 주요 산업은 물론이고 폐기물, 흡수원, CCUS(탄소 포집·사용·저장), 수소 등 기술 등을 아우른 거시 계획이다.
청사진은 실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밑그림이어야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과도하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산업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온다. 수소환원제철, CCUS 등 아직은 개념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국과 달리 원자력 발전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등 모습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방안을 내놓기까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비중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향후 30년 먹거리 구조를 어떻게 바꿔갈지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과거 수십년간 국민들을 먹여 살려 왔던 제조업 등 중후장대 산업을 버리고 그 공백을 금융업 등 여타 업종으로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탄중위 발표에서도 우리나라가 제조업 및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국내 주요 산업 중 어느 곳의 비중을 줄이고 어디를 늘릴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전이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가 15세 이상 500여명의 국민 대표를 모아 8월 한 달간 학습 및 논의를 진행한 후 9월 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또 산업·노동계·시민사회 등의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탄중위는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피해 최소화를 위해 체계적 근로자 직업 훈련, 신규 일자리 대폭 발굴 등 모호한 문구만 나열했을 뿐 시나리오 이행에 따른 고용충격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 아무런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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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전기료 등 비용상승 요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향후 30년 한국을 만들어갈 산업·고용구조와 국민들의 추가 부담을 결정하는 시나리오를 불과 2개월만의 학습·토론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순진하다.
환경은 이미 윤리·당위의 문제를 넘어 철저히 경제적 이슈가 돼 있다. 하지만 과연 당국의 인식도 그러한가. 프레온가스(염화불화탄소, CFC) 사용제한을 위한 1987년 몬트리올 협약 이후 수십년 간 '환경'은 비관세 무역장벽의 주된 근거로 활용돼 왔다. EU(유럽연합)이 최근 초안을 발표한 CBAM(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비판이 제기된다. 지금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냉정한 인식에 기반한 현실적인 밑그림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