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자금조달 창구가 회사채와 증시 양 방향에서 동시에 막히고 있다. 회사채는 고금리로 발행 부담이 커졌고 IPO(기업공개)는 상장심사 강화와 중복상장 규제 부담에 위축됐다. 유상증자도 주주가치 희석 논란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강화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조달 수단이 됐다.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자금조달의 현실적 대안으로 꼽는 이유다.
11일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담은 고금리 환경이다. BBB- 등급 회사채 금리가 10%를 넘어서면서 발행사가 감당해야 할 조달비용이 크게 높아졌다. 기관투자가들은 금리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채를 발행해도 원하는 규모의 자금을 모으기 어렵거나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커진다.
올 들어 회사채 순발행이 전년 대비 급감한 것은 발행분 대부분이 기존 빚을 갚는 데 쓰였다는 의미다. 올해 1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59조6147억원이었지만 상환액도 59조5824억원에 달했다.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순발행액은 323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발행액 19조6277억원과 비교하면 99.8% 줄었다.
IB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회사채 대신 자금을 조달하는 주요 수단으로 여기는 흐름이 강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대출은 수요예측 실패나 공모 흥행 부진 같은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데다 최근엔 금리 측면에서도 회사채보다 우호적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도 은행 대출에 우호적 여건으로 꼽힌다. 생산적 금융이란 부동산, 가계대출 등 비생산적인 자산 쏠림 현상을 억제하고, 경제의 성장 동력인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전략 산업과 혁신·창업 관련 기업에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IB 업계 임원은 "기업들이 은행 금리가 다소 우호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회사채 발행 니즈(수요)가 감소한 상황"이라며 "투자자 입장에선 지금이 금리 고점이란 인식이 있다면 회사채에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의 금리 관측이 워낙 분분해 회사채 투자에 대한 시각 나뉘는 실정"이라고 했다.

반면 IPO 시장에선 정부 정책이 오히려 자금조달을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IB업계에선 주가 변동성을 의식해 상장 시기를 관망하는 한편 각종 규제로 IPO 추진을 재검토하는 기업들이 잇따라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규모 기업의 IPO 문턱을 낮추는 취지였던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이와 연계된 상장주선인 책임 강화 제도 이후 주관사 부담을 높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상장주선인이 기술특례기업을 주선한 뒤 해당 기업이 조기에 부실화하면 이후 기술특례상장 주선 때 환매청구권 부담이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중복상장 규제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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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이 어려워졌고 증시가 변동성을 보이면서 메자닌이나 유상증자도 잘 안 되고 있다"며 "코스닥벤처펀드로 발행하는 벤처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모이지 않고 있어 발행 규모를 줄여도 자금이 모이지 않는 경우가 나온다"고 말했다.
유상증자는 지금처럼 주가 변동성이 큰 시기에 추진하면 회사가 자금난에 몰렸다는 신호로 읽히면서 주가에 크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대형 기업이 유상증자에 나서면 부실 가능성이나 자금조달이 어렵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며 "유상증자는 (상법 개정이) 이사의 충실의무에 맞춰 이사회 내에서 고민해보라는 취지이지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사실상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실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밸류업 노력을 공시하고 주주 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자금조달 행위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데) 지금 시점에선 조금은 나은 편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