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0만 의료인 홀린 스크럽… 실적·주가↑, 투자자도 홀렸다

2400만 의료인 홀린 스크럽… 실적·주가↑, 투자자도 홀렸다

반준환 기자
2026.08.2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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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의 미국 스몰캡 - 피그스
뻣뻣한 원단에 남녀 사이즈 구분 없어 불편했던 의료복
종사자 니즈 맞춰 신축성·항균·링클프리 등 내구성 높여
엔데믹 고전후 작년부터 실적 반전, 해외매출 67% 급증
현지 의료기관 단체구매↑… 점유율 상승 주가호재 전망

연초 이후 피그스(PIGS) 주가 추이/그래픽=최헌정
연초 이후 피그스(PIGS) 주가 추이/그래픽=최헌정

한국 직장인은 볼펜 한 자루부터 유니폼까지 회사가 주고 관리해주는 데 익숙하다. 미국은 결이 다르다. 사무실 볼펜이야 회사가 주지만 먹고사는 데 쓰는 연장은 본인이 장만하는 나라다. 연장은 내 것, 그래서 실력도 내 것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의료계도 근무복만큼은 개인이 산다. 병원은 직군별로 녹색, 보라색, 흰색 등 색깔 규정만 제시할 뿐 스크럽(scrubs)이라 불리는 의료복은 대부분 자기 돈으로 사 입는다.

스크럽은 대개 목이 브이(V)자로 깊게 파인 반팔 상의에 고무줄 바지 차림이다. 단추는 틈새에 균이 끼니 없앴고 머리 위로 벗을 때 오염된 옷이 얼굴에 닿지 않도록 목을 넓힌 스타일이다. 과거 스크럽은 병원 앞 의료용품점에서 박스째 쌓아놓고 팔았는데 사이즈는 남녀 구분이 없었고 원단은 뻣뻣했다. 불편했지만 저렴했다.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체로키, 디키즈 같은 워크웨어업체들이 남녀체형을 구분한 재단과 스판덱스 혼방을 선보였다. 의료 드라마 'ER'나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작품들이 나오면서 의료인들의 스크럽 차림이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2010년대에는 미국 의료복 브랜드 피그스(FIGS)가 등장하는 등 스크럽의 패션화, 프리미엄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피그스 창업자인 헤더 해슨은 위스콘신대학교 출신으로 패션업계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만난 간호사 친구의 펑퍼짐한 스크럽 차림에 충격을 받은 그는 맵시를 살리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옷을 수선해줬다.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간호사들의 수선요청이 이어지자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해슨은 월가에서 활동하던 트리나 스피어를 소개받아 2013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피그스를 세웠다.

월가에서 거액의 투자도 유치했다. 투자자 가운데는 요가복 대표 브랜드인 룰루레몬 출신들이 만든 캠프파이어캐피탈도 있었다. 이후 레전더리픽처스의 창업자 토머스 툴이 6500만달러를 넣으며 최대주주가 됐고 배우 윌 스미스, 전 룰루레몬 CEO(최고경영자) 크리스틴 데이도 투자자 명단에 있다.

피그스는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에 이름을 올렸는데 3년 성장률이 9948%였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터진 2020년 매출은 2억6300만달러로 전년의 2.4배가 됐고 이익도 5000만달러(환율 1400원 기준 약 700억원)를 냈다.

이듬해인 2021년 5월에는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했는데 공모주의 1%를 개인투자자, 특히 의료진에게 사전배정해 눈길을 끌었다.

피그스의 경쟁력은 의료계 종사자들의 니즈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옷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피온엑스'(FIONx)라는 원단은 실을 심초(core-spun) 구조로 뽑아 내구성을 높였고 네 방향 신축, 항균·방취, 링클프리(주름방지), 흡습속건 기능을 넣었다. 병원에서 오염물이 튀고 12시간 교대근무 내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산업용 세탁기에 수백 번 돌리는 환경을 견디도록 만든 것이다.

디자인도 현장에서 나왔다. 청진기·가위·스마트폰·명찰이 각각 들어가는 지퍼 주머니가 대표적이다. 지난해말 기준 미국 디자인특허 21건, 해외 디자인등록 112건, 미국 상표등록 18건을 보유했다.

가격은 저가 스크럽의 2~4배에 달하지만 소재와 기능성, 맵시에 만족한 소비자가 많다.

피그스도 상장 직후 어려움을 겪었다. 2021~2022년 고성장했으나 팬데믹 특수가 꺼지면서 이후 3년간 외형은 제자리에 멈췄고 순이익률은 2024년 0.5%까지 떨어졌다. 주가는 공모가 22달러에서 한때 6달러대까지 밀렸다.

그러나 지난해 반전이 시작됐다. 2025년 매출 6억3110만달러(약 8835억원)로 13.6% 성장하며 다시 속도가 붙더니 올해 2분기 매출은 1억9660만달러(약 2752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8.8% 늘었다. 3개 분기 연속 25% 이상 성장이다. 2분기 순이익은 2840만달러(약 398억원)로 전년 동기(약 99억원)의 4배가 됐다. 순이익률 14.4%, 조정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마진 18.6%다. 매출 대부분이 자사몰과 앱에서 나오는 D2C(소비자 직접판매)다. 중간유통이 없으니 매출 총이익률이 지난해 66.5%, 올해 상반기 71.8%에 달했다.

주력인 스크럽 매출이 27% 늘었고(매출 비중 82%) 아우터·언더스크럽·신발 같은 스크럽 외 제품은 40% 늘었다(18%). 미국시장에서는 매출이 22% 성장했고 유럽, 중남미 등 해외매출도 67% 급증했다. 진출국은 지난해 58개국에서 올해 7월 85개국으로 늘었다.

2026년 자사주 매입한도는 1억달러(약 1400억원)에서 2억달러(약 2800억원)로 2배 늘렸다. 2분기에만 2400만달러(약 336억원)어치를 사서 소각했다. 6월말 현금·단기투자는 2억9630만달러(약 4148억원), 차입금은 없다.

미국의 헬스케어·사회복지 종사자는 약 2400만명이다. 미 노동통계국은 2024~2034년 모든 산업 가운데 헬스케어가 가장 많이 성장할 업종이라고 전망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가 배경이다.

최근 주목할 것은 의료기관들이 직원 복장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미국 스크럽 시장에서 병원·의료기관이 단체구매한 B2B(기업간 거래) 물량은 약 15%에 그쳤는데 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주목한 피그스는 '팀즈'(TEAMS)라는 기관용 플랫폼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피그스의 시장점유율이 단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주가는 14.68달러로 52주 최저가인 6.50달러에서 2배 넘게 올랐지만 성장여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분기 주당순이익 0.15달러는 컨센서스 0.07달러의 2배가 넘는 서프라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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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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