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든 엄마든, 원래 다 보는 거 아녜요? 아마 우리 정보도 그럴걸요."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관련된 개인정보 불법 유출 논란과 관련해 쏟아지는 기사를 보던 모 대기업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행정관에서부터 개인정보보호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 관계자, 민간정보의 최일선에 있는 구청 직원 등까지 개인정보 유출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연일 터지면서 놀랍다기 보다는 "원래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 수준이 그런 것"이라는 서글픈 푸념이었다.
청와대는 "개인적 일탈 행위"라며 조직적 개입 의혹에 선을 긋고, 개인정보 유출에 개입한 것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어, 이번 사태는 검찰 수사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권력층에 있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타인의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취약한 개인정보보호의 현실이 다시한번 드러났다는 것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이름, 주민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개인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는 수집하거나 활용할 수 없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당사자인 채모 군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하려면 채 군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명백한 범죄행위로 민사·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적 논란을 떠나 이번 사태는 모든 국민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중한 개인정보가 전산망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정부관계자 누구에게 언제라도 노출된다면 개인정보가 각종 범죄 등에 악용될 위험이 커진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물론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무원이나 사회 고위층의 경우 '누구네 뭐 좀 알아봐달라'라는 식의 직간접적 청탁이 만연하고 이게 법 위반이라고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태를 단순히 개인 일탈 행위로 치부할 게 아니라 행정부든 청와대든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고위층의 불감증을 뿌리 뽑기 위해 엄벌원칙을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는 출범하면서 정보개방과 공유를 내세운 '정부3.0'을 실현하겠다고 호언했다. 수많은 데이터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안전장치는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마저 지금처럼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부3.0'은 위험한 행정실험에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