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메모리 공급업체에 "무릎 꿇고 돌아오게 만들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막강한 구매력을 행사했던 애플이 AI(인공지능)발 메모리 공급난으로 입장이 뒤바뀌었다. 삼성전자(225,000원 ▼7,000 -3.02%)·SK하이닉스(1,418,000원 ▼108,000 -7.08%) 등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의 한국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애플 경영진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과거 낸드플래시 공급업체에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최혜 고객' 지위를 요구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회계장부까지 감사했다. 감사 횟수가 워낙 많아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로부터 대량 이용 할인을 받을 정도였다.
압박은 경영진에게도 향했다. 2015년 샌디스크가 추가 공급 요청을 거절하자 당시 애플 구매 책임자였던 토니 블레빈스는 샌디스크 영업 담당자에게 산제이 메로트라 당시 CEO(최고경영자)를 무릎 꿇고 애플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위협했다. 메로트라는 현재 마이크론 CEO다. 애플은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 주문한 제품의 인수를 거부해 공급업체에 재고 부담을 떠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2년 전 애플의 플래시 메모리 구매량은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구글 등 4개사 합계의 약 2배였지만 지금은 이들 4개사의 구매량이 애플의 2배에 달한다.
애플의 올해 플래시 메모리 구매 비용은 250억달러로 지난해 60억달러보다 4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아이폰 저장용량을 256GB 늘리는 데 드는 추가 원가도 지난해 15달러에서 올해 66달러로 뛰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아이폰의 수익성까지 압박하는 셈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제조업체에는 유리한 환경이다. AI 서버용 HBM(고대역폭메모리)뿐 아니라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까지 수요가 확대되면서 가격 협상력이 높아졌다. 양사는 메모리 호황에 힘입어 올해 3분기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의 한국행도 잇따른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전날 한국을 찾아 삼성 계열사 사장단 50여명과 간담회를 갖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만났다. 리사 수 AMD CEO는 지난달 7일 방한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경영진과 협력을 논의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올해 한국을 찾아 AI 공급망 협력에 나섰다.
반면 팀 쿡 애플 이사회 의장은 2011년 CEO 취임 이후 15년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올해 9월 취임한 존 터너스 신임 CEO는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초기 경쟁사 폴더블폰에 대해 "싸구려 같고 조잡했다"고 혹평했다. 삼성전자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삼성전자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의 협력을 위해 한국을 찾는 가운데 애플 경영진은 여전히 다른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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