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렬의 신의료인]

"우리 애가 이렇지 않은데."
자녀가 도전적이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면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사춘기라서, 예민한 때라 그러려니 넘기는 경우도 많지만 알고 보면 우울증이 원인일 수 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짜증·예민함·집중력 부족 등 '천의 얼굴'을 가졌다. 잘못된 훈육 또는 방치하는 무관심 모두 자녀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가정에서 마음력(力)을 키워야 학교, 나아가 사회에서도 바른 성장이 가능하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의 증상과 해결책을 김영훈 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회장(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우울증은 아이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다. 의학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 시기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남아가 5~12%, 여아는 이보다 더 높은 10~25%로 보고된다. 즉 10명 중 1명은 적어도 한 번은 소아·청소년 시기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어린 시기 우울증은 △가족 중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있을 때 △부모를 잃은 경우 △여자아이(생리 등 호르몬의 영향) △낮은 경제력 △신체적 질병(약물의 영향) 등일 때 나타날 확률이 높다. 김 회장은 "성격적으로 예민해 쉽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정적인 사고나 완벽주의적인 성향 등이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하지만 사실 우울증을 일으키는 성격적인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성인의 그것과는 드러나는 양상에 차이가 있다. 성인의 경우, 우울증을 앓으면 스스로 "기분이 우울하다"라거나 "슬프다"고 표현하고 축 처져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아이들은 자신의 기분을 직접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짜증이나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가족과 주변 환경을 원망하며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자꾸 신경질을 내는 식이다. 김 회장은 "우울증에 걸린 아이와 대화하면 재미가 없다, 귀찮다, 짜증 난다, 피곤하다처럼 말보다 행동과 관련한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며 "사소한 일에도 원망과 비관하는 모습을 보이면 단순한 사춘기의 변화라기보다는 우울증으로 인한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체 증상 역시 소아·청소년 우울증의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김 회장은 "우울증 환자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문제가 생기고 이에 따라 호르몬이 교란돼 신체 증상을 일으킨다"며 "대게 아침에 이런 증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소화불량과 두통, 목과 가슴의 답답함이 대표적으로 체중 감소와 증가 또는 식사 습관, 활동량, 수면 형태 변화 등이 따라올 수 있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치료받지 않은 소아·청소년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는 일반 소아·청소년의 4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10대 사망원인 1위는 수년째 '고의적 자해'이기도 하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평소 규칙적인 생활(식사, 수면, 운동)을 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즐기는 게 좋다. 특히 김 회장은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극도의 고독과 외로움에서 출발한다"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잘 읽고 좋은 친구가 되어줄 필요가 있다"면서 '맞장구 치기 훈련'을 추천했다. 부모의 목소리가 자신과 비슷하면 무의식적으로 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김 회장은 "자녀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어법적인 특징, 성량, 속도 등을 잘 들어본 뒤 비슷한 패턴을 익히도록 노력하면 원활한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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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 우울증은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치료 결과가 우수한 편이다. 적절히 치료하면 환자 10명 중 9명은 완전히 회복하고, 나머지 1명도 약물과 정신, 인지, 행동치료 등을 복합적으로 적용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종전에는 소아·청소년 우울증 치료에 삼환계 항우울제가 사용됐지만 입 마름, 변비, 졸림 등의 부작용이 많았다. 최근에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SNRI) 등 새로운 항우울제가 개발돼 부작용은 훨씬 적으면서 효과적으로 청소년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일단 좋아지면 다른 정신질환과 달리 원래 상태로 회복되지만, 재발이 잘 되는 것이 단점이다. 치료받지 않으면 첫 발병 시 50%, 두 번째는 75%, 세 번째는 100%가 재발한다. 치료받다가 중단한 경우도 1년 내로 3명 중 1명이 재발한다. 특히 치료 시작 후 3개월 이전에 성급히 약을 끊는 경우 재발률이 높다. 김 회장은 "성인의 치료 목표가 우울증이 생기기 전의 모습으로 돌리는 것이라면, 청소년은 우울증이 나은 후 정신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며 "소아·청소년 전문의는 아이들이 성장과 변화의 시기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병을 진단·치료한다. 의료진을 믿고 의심 증상이 2주 이상 나타나면 가능한 한 빨리 전문적인 진료를 받길 권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