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정부에 의과대학 정원 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내용의 석명(釋明) 요청서를 22일 법원에 제출했다. 전의교협은 수험생·의대생·전공의 등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등을 대상으로 제기한 입학정원 증원 처분 집행정지 사건 심문기일 출석에 앞서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소송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지난 20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결정 처분(지역별, 대학별 증원 결정 포함)과 관련해 배정위원회의 위원 명단, 회의록, 위원회에 보고된 보고자료 등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석명 요청서를 이날 법원에 제출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틀 전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에 대한 수도권, 비수도권 대학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비수도권 대학엔 전체의 82%에 해당하는 1639명, 수도권은 서울을 제외한 경인 지역에만 361명(18%)을 증원했다. 충북대 의대의 경우 내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현재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나는 등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에 증원 인원이 집중됐다.

그러나, 정부가 각 대학에 의대 정원을 배분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부실하다는 게 전의교협의 판단이다. 이 변호사는 "교육부는 지난 15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분 배정위원회를 출범·가동한다면서 4월 중~하순쯤 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내용을 언론에 알렸다"며 "그런데도 구성한 지 5일 만에 기습적으로 증원처분을 발표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를 두고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4개의 의대 증원 취소에 관한 행정소송과 집행정지신청 사건에서 소 각하 결정을 받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조속히 대입 절차를 진행해 각 대학이 시행계획과 입시요강을 발표해 버리면, 서울행정법원이 입시생들의 기대이익을 존중해 소 각하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 변호사는 "의대 교수들의 전문적이고 정치 중립적인 의학교육을 교수할 권리 등이 침해됐고 나아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 긴급한 상황"이라며 "5200만 국민들의 생명권, 건강권과 직결된 이번 증원 결정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석명 요청서 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의학 교육 현장에서도 불안과 우려가 가득하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지금까지 10년 넘게 70~80명 수준으로 증원을 늘려달라고 할 땐 응답이 없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200명 증원을 통보했다"며 "현재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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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먼저 현재 3개뿐인 강의실에 200명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중 오송읍에 신설된 3호관 강의실은 개신동에 위치한 충북대 캠퍼스와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교양과목을 다수 수강하는 의예과 1, 2학년에 학습권이 침해된다는 점도 우려했다. 의예과 2학년은 기초 실습을 받는데, 이 역시 2개뿐이라 4배 이상 학생이 증원하는 경우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해부용 시신(카데바)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최 교수는 "1년에 10구 정도 시신을 기증받아 8~10개 특수 실험실에서 해부 실습을 진행한다"며 "교육부나 정부가 나선다고 이 문제를 풀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본과 3학년은 충북대병원에서 임상 실습 과정을 수료해야 하는데 이 역시 현재 90명의 임상교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의과대학은 교육 환경이 의사 배출에 적합한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으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고 2, 4, 6년 주기 인증받는다"며 "앞선 여러 이유로 인증에 불합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큰데 이러면 의대 졸업 예정자가 의사고시를 볼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꺼번에 학생을 4배 가까이 늘려 수용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도 그 책임은 온전히 의대 학생과 교수들이 지게 됐다"며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25명에서 200명으로 정원이 늘어난 부산대 의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의대 증원 배분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회장도 카데바 수급 한계, 강의실 건물 수용 인원 제한이 원활한 교육의 걸림돌이 될 거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병원 교수들은 진료 교수, 임상교수, 기금 교수, 전임 교수로 구분되는데 학생 교육을 책임지는 전임 교수 티오(정원)를 100개로 늘려도 기금 교수 이동할 뿐 전체 총원은 변하지 않는다"며 "젊은 진료, 임상 교수가 올라오면 될 거라고 하지만 이들은 현재 사직하고 병원을 떠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늘어난 의대 정원이 비수도권에 집중돼도 이는 지역의료 육성과 큰 관련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지역의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고 지역 필수 의료가 보장된다는 건 착각"이라며 "환자가 없으면 만성 적자를 보는 현행 수가체계로는 아무리 최신식의 좋은 병원 만들어도 세금 먹는 하마가 되고 졸업생들도 지역에 남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수도권 입학 정원보다 지역 입학 정원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전공의 정원은 지방보다 수도권이 더 많아 상당수는 서울·경기 등에서 수련받는다"며 "조만간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이 6600병상 규모로 들어서면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배분 과정에 한 차례도 학교에 실사를 나온 적이 없다"면서 "정부와 대통령실이 2000명에 병적으로 집착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이성이 마비되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