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의약품 관세가 제약업계 최대 변수로 언급되는 가운데, 대부분의 대형 제약사(빅파마)들은 인수합병(M&A) 등 기존 사업 전략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하고 나섰다. 무역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업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단 뜻이다. 국내 업계에선 빅파마들의 표면적 투자 의지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도, 실제 협상 과정에선 대형 기업과 국내 업체 간 비대칭적 계약 구조가 심화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29일 피어스바이오텍 등 제약·바이오 전문 외신에 따르면 해외 대형 제약사들은 최근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M&A 등 기존 사업 전략을 계획대로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크리스 보어너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4일 실적 발표 이후 "사업 개발은 여전히 최우선적 과제"라며 "업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관세 위협·미국 보건 인력 구조조정)보다 사업 개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BMS는 2027년 말까지 20억달러(약 2조8700억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해당 계획은 직원 2000여명의 정리해고안(2025년 말)을 포함해 지난해 초 발표한 15억달러(약 2조원) 절감 계획과는 별개의 안이다. BMS는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확보한 여유 자금을 M&A 등에 활용하겠단 방침이다. 이와 관련 보어너 CEO는 "사업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재정적 유연성을 갖게 됐다"며 잠재적 인수 대상에 대해선 "BMS의 핵심 치료 분야 내 입지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머크(MSD) 역시 관세 영향을 체감하고는 있지만 사업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머크는 앞서 미국과 중국·캐나다·멕시코 간 시행된 관세로 인해 2억달러(약 28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롭 데이비스 머크 CEO는 지난 24일 실적 발표 직후 관세의 영향에 대한 질문에 "파이프라인 확장 위한 기회를 계속 발굴해야 한다는 믿음과 열망을 변함없이 유지 중"이라며 "모두가 불확실성과 다퉈야 하는 현재 상황이 우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만, 신중한 가치 평가와 함께 공격적으로 움직여 거래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브비도 최근 실적 발표 당시 "관세 정책의 구체적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 영향을 예측하는 건 시기상조"란 입장을 밝혔다.
외부 혼란에도 사업 개발 전략을 유지하겠단 빅파마의 방향성은 국내 업계에도 긍정적이다. 다만 기술이전 협상 등 협업 과정에선 국내 기업의 협상력이 이전보단 약화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망한 기술이나 파이프라인을 가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매력적인 매수·협업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빅파마가 최근 지출하는 비용에 더 민감해지고 있어, 한국 기업의 기술이전이나 M&A 추진 시 과거보다 더 높은 성과 조건을 제시하는 등 요구사항 수준이 까다로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빅파마들이 과학 중심의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한 점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업계에 대한 글로벌 투자 심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적 신호"라며 "다만 단기적으로는 관세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구조조정 이슈 등으로 변동 폭이 클 수 있어, 특히 국내 중소업체의 투자 유치나 주가가 단기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사업 추진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겠단 의견도 있다. 토마스 쉬네커 로슈 CEO는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 "의약품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M&A의 재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외부 환경이 급변할 수 있는 만큼 전 세계 제약 업계가 M&A 계획을 줄이고 이후 상황을 지켜보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슈는 트럼프 행정부에 직접 관세 면제를 요청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