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장품 안전성 평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

[기고] 화장품 안전성 평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

김규봉 단국대 약학대학 교수 (인체위해성평가연구소장)
2025.08.22 09:41
김규봉 단국대 약학대학 교수(인체위해성평가연구소장)
김규봉 단국대 약학대학 교수(인체위해성평가연구소장)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액은 약 13조 9000억원(약 102억달러)이다. 사상 최대 실적이자 세계 3위의 기록이다. 그러나 양적 성장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 이제 세계 시장은 제품의 안전성을 묻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모든 화장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 안전성 평가 보고서(CPSR)를 작성해 보관하도록 규정한다. 규제당국이 요구하면 제출해야 한다. 자료가 없으면 판매할 수 없다. 중국은 2021년 시행된 화장품 위생 감독 규정(CSAR)에 따라 신규 원료와 제품에 대한 안전성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자료가 없으면 통관이 되지 않는다. 미국도 2022년 제정된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MoCRA)에 의해 올해부터 제품 등록 시 안전성 데이터를 갖춰야 한다. 제품 책임자를 지정하고, 시판 후 안전성 모니터링도 강화된다.

안전성 평가 보고서 없이 수출을 시도하는 것은 여권 없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과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입국 심사대에서 발이 묶인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자료가 없으면 통관이 거부되거나 몇 달씩 지연된다. 이 과정에서 유통 기회를 잃고 마케팅 시기를 놓친다. 업계 조사에 따르면 규제 요건 미준수로 평균 3~6개월의 지연이 발생한다. 매출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8년부터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를 업체 규모와 품목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며 2031년에는 모든 화장품과 업계 전반에 전면 적용할 계획이다. 안전성 평가는 원료의 특성과 인체 허용 기준, 노출량을 분석해 위해도를 산출하고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위해 가능성과 원료 간 상호작용, 미생물 위험을 종합 검토해 최종 안전 여부를 판정한다.

국내에서 안전성 평가에 정통한 전문가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하나의 제품 평가에 수백만 원이 들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 부족과 데이터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신제품 출시 속도가 늦어지고 비용 부담이 커진다.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식약처는 안전성 평가자 양성 교육과정과 원료 독성 데이터베이스 구축, 대체 시험법 연구개발 지원, 전문기관 지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은 이 인프라를 잘 활용해야 한다. 국내 보고서와 해외 제출 서류를 동일 기준으로 준비하면 중복 작업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업계의 고충 해결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좋은 정책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는다.

화장품 안전성 평가는 더 이상 규제가 아니다. 글로벌 신뢰를 확보하는 투자다. 보고서가 갖춰진 제품은 규제 리스크를 줄인다. 바이어와 소비자의 신뢰도 높인다. 준비가 늦으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2031년까지 6년 남짓 남았다. 지금부터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비용을 줄이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화장품 안전성 평가는 'K-뷰티'의 새로운 여권이다. 새로운 제도에 기반한 차세대 K-뷰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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