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위기, 1000억유로로 해소될까

스페인 위기, 1000억유로로 해소될까

최종일 기자
2012.06.10 03:43

일부 전문가 "제한적 구제금융은 시장의 신뢰 회복 못 시킬 것"

유로존 4위 경제대국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자국 은행권의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 독일 등 주변국의 압력에 마지못해 구제금융을 신청한 모양새지만, 구제금융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면적 구제금융 대신 은행권에 대한 제한적 구제금융의 성격을 띠었지만, 스페인 지원액이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상회, 단기적으로는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금액으로 스페인 부실 금융권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루이스 데 귄도스 스페인 경제장관은 9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들의 긴급 전화회의가 끝난 뒤 마드리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로존 국가들에 "스페인이 은행권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은 웹사이트에 성명을 내고 "스페인에 최대 1000억유로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는 안전마진을 포함해 스페인 은행권의 부족한 자금을 추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스페인·유로그룹, 17일 그리스 재총선 앞두고 구제금융 전격 합의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정확한 지원 규모는 현재 외부 컨설팅업체에 의해 진행중인 은행권 스트레스테스트(자산건전성평가) 결과가 나온 이후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외부 기관 평가는 오는 21일께 나올 예정인데, 이에 앞서 스페인이 서둘러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오는 17일 그리스 재총선을 앞두고 유럽의 사정이 그만큼 다급함을 반증한다.

예컨대 그리스 재총선 결과 긴축을 반대하는 좌파연합이 승리해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과)와 유로존 이탈 공포가 불거질 경우, 스페인 사태가 통제 불능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스페인이 유로그룹과의 합의를 통해 구제금융을 전격적으로 신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자체적으로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스페인 은행권이 '금융쇼크'를 견뎌내기 위해선 총 370억유로 규모의 신규 자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과는 스페인 경제가 올해 4.1%, 내년엔 1.6% 뒷걸음칠 것이라는부정적 시나리오를 상정해 추산되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한 IMF 관리를 인용해 스페인 금융권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공식적으로 밝힌 금액을 넘어 600억유로에서 최대 800억유로에 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도 지난주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며 스페인 은행의 재자본화 비용은 당초 300억유로로 추산했지만 현재 예상치는 600억유로이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최대 1000억유로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유로그룹은 이같은 시장의 우려와 기대를 감안해 스페인에 대한 지원액을 최대 1000억유로로 계획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즈너앰파스 퍼스널 웰스 어드바이저 그룹의 팀 스파이스 파트너는 "스페인 구제금융은 위기 전염을 막기 위한 중대한 조치"이라며 "지원액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최소한 미국과 글로벌 주식시장에는 단기적 공포를 완화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예상보다 많은 1000억유로 단기적으로는 도움되겠지만...

하지만 스페인의 지원금액이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스페인 부실은행의 중심에 서 있는 방키아의 구제자금이 최근 눈덩이처럼 불어난 예에서 보듯이 스페인 은행의 부실규모를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런던 소재 롬바드 스트리트 리서치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찰스 듀마스는 "유럽인들은 과거부터 문제의 규모를 과소평가해온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의 유럽 경제 담당인 메건 그린은 스페인 은행권은 최대 2500억유로의 자금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스피로 소버린 스트래터지의 대표 니콜라스 스피로는 "스페인은 결코 건너지 말았어야 하는 루비콘강이다"며 "스페인에 대한 제한적 구제금융은 시장에 신뢰를 회복시키는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다음 단계에 더욱 많은 지원액이 필요하다는 우려를 키울 수 있다. 또 이탈리아가 더욱 큰 압박을 받도록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전날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스페인 은행 위기는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한 의존이 큰 이탈리아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이탈리아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3월 5% 아래에 머물러 있었지만 스페인 은행위기가 고조되면서 최근엔 5%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의 벼랑 끝 전술

스페인은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오는 17일 그리스 재총선 이전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재총선에서 반(反) 긴축 정당이 다수당이 돼 그리스에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 스페인 은행 위기와 맞물려 유로존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루전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스페인과 그리스의 상황에 따라 유로존 모든 국가들의 등급 재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외부의 금융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경제 전염 우려를 이용하는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MYT)는 보도했다.

실제 EU는 이미 전면적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비해 스페인에 대해서는 가혹한 긴축정책과 같은 엄격한 조건을 붙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유로그룹은 스페인이 지금까지 재정건전화 노력을 충분히 취한 만큼, 기존의 약속을 지키는 선에서 구제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라호이의 벼랑 끝 전술이 어느 정도는 통한 셈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