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방법이 없잖아.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지 뭐.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서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를 잃고 있는데, 그것은 분개하는 능력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앙가주망(사회참여)'이다."
이틀 전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프랑스 작가 스테판 에셀의 에세이인 '분노하라(INDIGNEZ-VOUS)'에 나온 유명한 구절이다.
32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은퇴한 스테판 에셀이 한 행사에 참석해 가졌던 짧은 구두 연설을 듣고 감동한 한 편집장의 애절한 부탁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90세를 넘긴 노인의 따끔한 메시지는 미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본의 상징인 월가에 반기를 들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2011년 월가의 부도덕성에 반발해 일어난 '월가 시위'는 비록 73일만에 막을 내렸지만 금융자본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재정을 통합 운영할 것이란 보도에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일이 있었다.
분노는 곧 '한국납세자연맹'에 의한 수 만 명의 국민연금폐지운동으로 까지 번졌고 결국 인수위원회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국민연금 본질에 대한 문제라던가 세대 간 갈등이라는 논란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에셀의 시각에서 해석하면 부정의(injustice)에 대한 분노가 비폭력적 방식의 사회참여를 일으킨 바람직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분노에 대한 담론이 아직까지 긍정적으로 펼쳐지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에셀이 던지고 간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영화 '벤디트 퀸'의 실제 주인공인 폴란 데비는 인도 천민으로 태어나 의적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분노를 승화시켜 국회의원이 됐고, 빈자와 여성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세계적 통신사인 블룸버그도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해고통보를 받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에셀은 분노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했다기보다 분노를 발전적 에너지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수동적인 사회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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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실업과 집값 하락, 비정규직 등 분노가 가득히 쌓여있는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출구가 없는 것 같은 답답한 현실이 아니라 분노를 사회적 진보로 연결 짓지 못하는 우리들의 비겁함에 있지 않을까.
"한국인이라는 의미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에세가 우리나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