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야반도주, 2008년의 데자뷔

[광화문]야반도주, 2008년의 데자뷔

베이징(중국)=원종태 특파원
2015.12.29 06:10

사장은 끝내 야반도주했다. 4000여명 직원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1주일이 넘도록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3개월째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삶에서 가장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롱핑서로에 위치한 스마트폰 제조업체 중티엔신전자 사장이 회사 경영을 포기하고 야반도주해 중국 네티즌들이 들끓고 있다. 4000여명의 직원들을 하루 아침에 배신한 사장의 몰염치만 도마에 오른 것이 아니다. 겉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중견기업 사장의 야반도주는 중국 제조업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중티엔신전자가 어떤 회사인가? 선전시 북동부의 산업단지 밀집지역에 위치한 이 기업은 공장 부지만 3만㎡가 넘고, 고정자산만 2억 위안(358억원)에 달한다. 2009년 모기업에서 분사한 이래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며 회사도 고속 성장의 과실이 주렁주렁 열리는 듯 했다. 지난해 매출은 16억 위안(2864억원). 최근 3년 간 매년 100% 이상씩 매출이 늘었다. 화웨이나 중싱, 비야디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에 스마트폰 부품을 납품하며 거래처가 탄탄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사장은 평균 임금 3500위안(62만원)인 직원들의 월급을 석 달째 주지 못했다. 그나마 이전 수 개월치 월급도 제때 나온 적이 없었다.

중국 제조업의 위기는 비단 이 회사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11월말에는 푸젠성 푸저우시에서 직원 2000명을 둔 IT기업 이딩그룹도 사장이 종적을 감췄다. 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 1번지'로 불리는 광둥성 둥관시에서는 지난해 428개 기업이 도산했다. 올해 수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제조업이 흔들리다보니 이들을 주 고객으로 삼는 서비스업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우쓰로의 푸린호텔 사장도 야반도주했다. 사장이 사라지자 같은 도시에 있는 계열 호텔 하이바오푸다호텔도 영업을 중단했다. 어림잡아 90명이 넘는 호텔 직원들이 35만 위안 이상의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앉았다. 호텔 협력업체들이 기존에 납품했던 식자재까지 모두 차에 싣고 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현재 이 호텔 사장은 건물주는 물론 납품업체들에게 진 빚만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체 사장들도 경영난을 감당하지 못해 몸을 숨기기는 마찬가지다. 며칠 전까지 버젓이 영업하던 음식점이나 학원, 미용실, 웨딩스튜디오, 어린이 실내 놀이터에 이르기까지 자영업 사장들의 야반도주는 통계 자체를 잡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자영업체를 막론하고 대출→투자→사업 확장→자금난→사장 도주의 수순으로 비정상적인 사업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리한 몸집 키우기가 자충수가 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야반도주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때 대륙의 경쟁력으로 꼽혔던 인건비가 크게 오르며 노동집약형 기업들의 영업비용이 이전보다 50% 이상 급증한 탓이다. 어디 인건비뿐인가. 부동산 임대료나 환경보호 비용, 세금 등 기업 부담이 늘어난 항목은 한 둘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획기적인 제조업 육성 정책 '중국 제조 2025'을 내놓았지만 '제조업 강국' 독일이 부러운 것과 실제 독일처럼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전 세계 돈의 흐름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중국 사장들의 야반도주가 일회성으로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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