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인과관계 부정한 대법원 판례 오류 지적
과로와 스트레스를 간질환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부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가 부적절한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그동안 판결을 내려 왔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항소할 경우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24일,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2005년 간암으로 사망한 김모씨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김씨의 사망과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김씨가 기존에 갖고 있던 질환인 간염을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간암을 유발했고, 이로인해 김씨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김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1993년 외무관으로 임용됐으며, 2005년 1월 병원에서 감암 판정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다 그 해 7월 사망했다. 김씨는 임용 무렵 만성 B형 간염 진단을 받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2002년까지 1년에 한번 이상 정기검진을 받아 왔으나 이후에는 재외공관 등에서 근무하면서 열악환 의료환경과 과중한 업무량으로 적절한 검진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대법원, 부적절한 연구보고서 바탕으로 판단"= 과거 대법원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간염의 경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회와 감정촉탁 등을 근거로 과로 및 스트레스의 정도를 판단한 후 업무상 대해 여부를 판단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2년10월 "의학적 소견으로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간질환이 발생되거나 악화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처음 판시한 이래 동일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번 행정법원 재판부는 "이같은 대법원 태도 변화는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의뢰에 따라 대한간학화에서 발표한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 용역보고서의 결론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인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용역보고서에서 결론의 도출 근거로 제시한 외국의 연구들은 적당한 육체적 활동이 간질환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연구일 뿐 육체적 과로와 간질환 사이에 관련이 없음을 증명한 연구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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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따라서 이 용역연구보고서는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논문이 아니라 현재까지 의학계에서 육체적 과로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거나 또는 연관성이 없다고 제시한 신뢰할만한 보고는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용역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대한간학회는 현재까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인과관계에 관해 아무런 연구실적이 없고, 과로 및 스트레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과로·스트레스는 간질환 악화 요인"=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40대 이상의 간질환 환자에게 있어 과도한 스트레스나 과로는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기존 간질환을 자연경과속도 이상으로 악화시킨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은 스트레스가 활동적 바이러스나 백신의 침입에 대한 면역계의 방어능력을 낮출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고, 이 용역연구보고서의 대표집필자 역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스트레스 또는 과로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되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증가한다"며 "그로 인해 특히 40대 이상인 경우 간세포가 파괴되거나, 그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의학계에서 인정하는 견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