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회장 출사표, 황영기 행장과 '빅 매치'
2002년 가을, 재정경제부 체육대회 뒷풀이 자리. 전윤철 경제부총리(현 감사원장)가 이례적으로 경제정책국장을 불러냈다.

"이 사람이 바로 '한국의 아인슈타인'이다. 이렇게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천재'는 본 적이 없다." 당시 경제정책국장이 바로 6일 사의를 표명, 우리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응한 박병원(55) 재경부 제1차관이다.
그는 인물을 대거 배출한 행시 17회 가운데 손꼽히는 실력파. '최고'라고 자부하는 재경부 공무원들조차 박 차관을 두고 '천재'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박 차관은 어떤 문서든 밑줄을 쳐가며 꼼꼼히 숙지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그는 거시정책, 예산 등 '전공'은 물론 금융, 세제,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공'을 갖췄다는 평가다. 2003년 9월 이후 3년5개월 동안 재경부 차관보, 차관을 지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 차관은 내용 파악이 빠르고 암기력이 좋아 후배들 사이에서 가장 보고하기 편한 상사로 꼽힌다. 그의 업무 태도 역시 후배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무리 낮은 후배에게도 절대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같이 고민해 보자면서 논쟁을 하고, 결국 설득을 통해 동의를 얻어낸다"(재경부 사무관)
대외적으로는 '원칙론자'로 통할 만큼 소신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유연한 스타일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부동산 정책을 놓고 여당과 의견 차이를 감추지 않았듯 소신을 내세우지만, 일이 진척이 되지 않을 때는 돌아가는 합리성을 갖췄다는 얘기다. 일각에서 알려진 '원칙적 시장주의자'라는 평가가 정답은 아니라는 것.
'소신을 가진 실력파 공무원'이라는 평가 앞에 '합리적'이라는 표현을 하나 더 붙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차관은 외부 회의를 갈 때도 별도의 자료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는다. 웬만한 내용은 모두 숙지하고, 꼭 필요한 자료만 챙겨서 가는 실용적 스타일.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만큼 화법도 직설적이다. 좀처럼 에둘러 말하거나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화'를 겪은 사례는 많지 않다. 그만큼 '적'이 별로 없다는 뜻이겠다.
인간 '박병원'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호기심'이다. 박 차관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호기심 많은 소년의 감수성'을 읽어낼 수 있다. 넘치는 호기심은 수많은 취미로 연결됐다.
독자들의 PICK!
박 차관 스스로 애착을 가진 취미만 식물학, 시 낭송(한국어, 프랑스어), 라틴어, 중국어, 러시아어, 한문, 와인, 미술, 클래식 음악까지 다양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취미가 많은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이 가운데 식물학, 중국어 등은 직접 책을 쓰고, 중급 사전을 하나 만들기도 했다.
1998~2001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 시절에는 동구권 지원 업무를 맡으면서 러시아어를 배워 귀국 직전 퇴임사를 러시아어로 하기도 했다.
또 해외 출장 중 시간이 남으면 관광 대신 현지의 식물원이나 미술관을 찾을 정도로 나무와 그림에 관심이 깊다.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는 꼭 진공관 전축에 LP판만 고집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라고.
최근 다른 부처로 옮긴 한 후배 국장은 박 차관에 대해 "한 순간도 나라 걱정을 놓지 않는 우국지사, 타고난 공무원"라고 했다. 박 차관의 끝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끊임없는 '고민'에 있다는 얘기다.
그에 대해 "만약 가능하다면, 가장 닮고 싶은 공무원"(한 재경부 사무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떠나는 박 차관을 두고 재경부의 한 국장은 "그 그릇으로 볼 때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않겠느냐"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약력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미 워싱턴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제기획원 경제조사관실 △대통령비서실 △경제기획원 예산관리과장 △재정경제원 재정계획과장·예산정책과장 ·예산총괄과장△재정경제원 장관실 비서실장 △재경부 경제정책국장 △재경부 차관보 △재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