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들의 불평, 고마워해야"

"외국 기업들의 불평, 고마워해야"

대담=홍찬선 경제부장, 정리=황국상 기자, 사진=홍기원 기자
2008.02.04 12:12

[머투초대석] 앨런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장

"런던이나 뉴욕 등 세계 금융중심지 그 어디든 자국민과 외국인이 뒤섞여 있는 보편적인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중심지를 지향한다면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는 것은 당연하죠."

↑ 앨런 팀블릭(65) 서울글로벌센터장 ⓒ홍기원 기자
↑ 앨런 팀블릭(65) 서울글로벌센터장 ⓒ홍기원 기자

앨런 팀블릭(65) 서울글로벌센터장은 한국을 칭할 때 '우리'라고 말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가 영국계 은행 임원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게 1977년, 우리나라와 연을 맺은 기간은 거의 반평생에 이른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외환위기로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참담함까지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던 팀블릭 센터장이다.

더욱이 2003년부터 4년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산하기관인 인베스트코리아의 단장과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뛰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23일부터 서울글로벌센터의 초대 관장을 맡아 앞으로 1년간 외국인들의 생활·문화·행정·경제 등 전 부문을 지원하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팀블릭 센터장에게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한국 경제에 활력이 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케인즈가 '투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들었던 '야성적 충동(애니멀 스피리트)'가 부족한 탓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하려는 의욕이 매우 강합니다. 물론 투자가 주로 국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 투자분이 줄어든 부분도 있습니다만, 한국 대기업들의 이익회수율은 매우 높습니다. 규모도 크고요.

하지만 지난 세월과 비교해 보면 한국 사람들 요즘 힘이 많이 없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10% 전후의 성장률을 구가하던 시기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요. 특히 요즘 '중국이 추격해온다'며 한국의 성장률과 비교하고 또 침체되곤 하더군요.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중국은 아직 개발과정에 있어서 성장할 여지가 많아요. 중국의 10% 성장률과 한국의 4~5% 성장률은 그 의미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는 선진국과 직접 비교해야 합니다. 중국과 비교할 성질의 단계는 지났어요.

- 한국 경제의 미래를 '아시아 금융중심지(허브)'에서 찾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금융허브를 만들려고 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금융허브에서 무엇을 배워올 것인가를 따져야 합니다. 런던이나 뉴욕·프랑크푸르트·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의 금융허브들은 '명성'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금융과 관련한 모든 거래를 하기에 안전한 곳이라는 평판이 자자합니다.

명성은 곧 '신뢰성'이자 '법적 안정성'입니다. 우리가 금융허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도 국제적 금융거래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죠.

국제적 기준이 그 사회에 녹아들어간 것이 바로 법 체제일 테고요.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법 체제를 글로벌화 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 앨런 팀블릭(65) 서울글로벌센터장 ⓒ홍기원 기자
↑ 앨런 팀블릭(65) 서울글로벌센터장 ⓒ홍기원 기자

- 노무현 정부 때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성과는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금융허브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해주십시오.

▶노 대통령은 허브를 너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허브'라는 말이 지겹다는 이들도 있다더군요(웃음). 중요한 것은 허브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 '실질'입니다.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비해 한국 법체계를 글로벌화하는 작업은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에는 런던의 규정이 있고, 도쿄에도 도쿄 나름의 룰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국제적 거래가 충돌없이 호환됩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죠.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이미 오랫동안 국제법적 룰을 따라 거래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한국만의 룰이 있다' '한국은 다르다'며 자국만의 잣대를 갖다대려 해온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면 외국 기업들은 혼란스러워해요. 다른 나라들은 이미 경쟁적으로 법 체제 정비에 돌입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는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정책은 그간 좀 나아졌습니까.

▶1998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외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매우 수동적이었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국 자본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와서는 되레 외국인 투자 관련 정책이 이전보다 약해진 감도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합니다만, 대중주의(포퓰리즘)으로 기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외국 기업이 바라는 점을 하나하나 다 만족시켜줄 수도 없습니다. 기업들이 바라는 점들은 각각 다릅니다. '테일러메이드 솔루션', 즉 맞춤형 정책을 실시하긴 힘들죠. 물론 국제법을 무시하고 '우리 규범에 무조건 맞춰라'식의 원사이즈-핏-올(One Size Fits All) 정책이 위험한 것은 아까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한 단계 발전한 '기성복'형 정책입니다. 큰 틀은 잡아두고 그 안에 다양한 변수를 다 포함시킬 수 있는 걸 말합니다. 정부는 원칙을 애초에 잘 세우되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개개의 거래에 개입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자주 바뀌는 정책도 마찬가지로 문제이고요.

- 외국 기업들은 주로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까.

▶불만을 얘기하는 기업은 그나마 고마운 편입니다. 한국의 이런저런 규제들을 보고 불평을 터뜨리기보다 한국을 제치고 그냥 기업 세우기 좋은 싱가폴이나 중국, 말레이시아로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도권 지역 집중을 막기 위해 사업체 설립을 엄격히 제한하고, 남쪽(수도권 이남)으로 자꾸 가라고 하는 점은 이해되긴 합니다. 그래도 기업은 시장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같은 지역 내 동종업계가 있다고 해서 '거기 진출하면 안돼'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봐요. 물론 새 정부가 그런 지역별 구분을 재정비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센터장으로 취임하신 지 일주일 남짓 지났습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한국에도 뛰어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만, 외국인 전문가를 대거 들여와야 합니다. 런던이든 뉴욕이든 국제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는 지역에는 풍부한 인재 풀(Pool)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즉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은 바로 세계화된 전문 인력들에게서 나옵니다.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을 갖춘 외국 인력들을 더 많이 받아들여서 이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융합하고 새로운 방안을 창출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다 글로벌한 마인드를 지녀야 해요. 서울글로벌센터 역시 그런 취지에서 설립된 겁니다. 서울이, 한국이 비즈니스맨 혼자만 달랑 투자하러 오는 그런 곳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며 만족할 만한 의료·교육 서비스도 받고 다양한 문화도 향유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자 나라라는 것을 알릴 겁니다.

- 바쁘신데 오랜 시간동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서울글로벌센터가 훌륭한 성과를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 앨런 팀블릭(65) 센터장이 서울글로벌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홍기원 기자
↑ 앨런 팀블릭(65) 센터장이 서울글로벌센터를 소개하고 있다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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