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 서유럽도 영향…2006년 사태 넘을 수도
유럽의 천연가스 최대 공급원인 러시아가 밸브를 잠갔다. '가스 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주변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던 서유럽 국가들까지 가스 공급부족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불과 3년전인 2006년 이와 유사한 문제로 사상 최악의 가스공급 중단 사태를 겪었던 유럽 국가들은 때마침 한파까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가스대란'이 재현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 경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고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공급 협상 무산의 영향이 3년전 사태를 뛰어넘는 사상 최악의 가스대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게는 가스부족 사태가 현실로 나타났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의 가스공급량을 줄이면서 독일부터 그리스까지 전 유럽 국가들에 가스공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수십년래 최악의 한파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가스 대란'이 더 춥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은 잔금지급을 미루고 공급가 인상도 거부한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몫의 가스공급을 줄였을 뿐, 다른 유럽 국가로 보낼 가스공급을 중단한 것은 우크라이나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공급량을 줄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경유해 유럽 각지로 연결되는 3개 파이프라인의 하루 가스공급량을 2억2500만㎥에서 6500만㎥로 줄였다고 밝혔다.
공급량을 줄인지 불과 하루만에 '가스 대란'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동유럽과 중부 유럽의 공급량은 이미 위험수준으로 급감했으며 독일 등 서유럽의 경제대국도 공급량 부족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6일 현재 불가리아, 터키, 마케도니아, 그리스, 크로아티아는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공급이 완전 차단됐으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슬로베니아는 공급량이 90% 감소했다. 폴란드(85%), 슬로바키아(70%), 루마니아(75%) 등도 공급량이 70% 이상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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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가스소비국으로 수요량의 4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독일은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경유하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량이 심각하게 줄었다"고 밝혔다.
3위 소비국인 이탈리아는 수요량의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공급량이 90%나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가스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프랑스도 수요량의 20%를 담당하는 러시아에서 가스공급이 70% 줄어 불안한 상태다.
이미 폴란드,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비상사태를 맞아 공공수요와 주민들의 난방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기업의 가스사용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도 5일 익일 인도분 천연가스 가격이 12%나 급등하는 등 영향을 받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의 역대 최장기 가스공급 중단 사례는 2006년 1월1일부터 3일간이다. 공급중단 기간이 짧아 당시 서유럽 국가들의 피해는 제한적이었다.
옥스포드연구소의 조나단 스턴은 "이번 가스공급 중단의 파급효과는 유럽연합(EU)이 사태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9일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가즈프롬은 작년말 우크라이나 국영에너지기업 나프토가즈와의 협상에서 공급가격을 1000㎥ 당 180달러에서 250달러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으나, 우크라이나 측이 이를 거절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가스공급을 중단한 이후 협상가격을 418달러로 오히려 더 인상했다. 기존 요구보다 67%나 높은 가격을 요구하며 배짱을 부리는 데는 유럽 전역의 '가스 대란'이라는 볼모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때문에 유럽 각국에서는 2006년 위기 이후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소홀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2006년 위기 이후 유럽연합 차원에서 대규모 가스저장시설을 갖춰 각국의 취약한 에너지예비율을 보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뉴칼리지옥스포드의 디터 헬름 교수는 "EU가 또 다시 위기를 때워넘기려고만 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2006년 가스대란을 겪으면서 유럽이 어떤 조치를 취했야 했는지는 너무도 분명했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이뤄진 것이 없었다"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