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재정위기 전염병 '처방전' 없었다

EU 재정위기 전염병 '처방전' 없었다

권다희 기자
2011.03.28 07:57

-EFSF 증액방안 결론 못내…은행 부실화 논의 없어

-포르투갈 구제금융 수순 불구 스페인은 낙관론 우세

유로존의 재정위기 타개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24∼25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까지 국제통화기금(IMF)과 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유럽 앞날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우려가 높다.

EU 정상들은 이번에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어떻게 증액할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EU 정상들은 FFSF가 회원국에 지원할 수 있는 총액을 기존 2500억유로에서 현재 EFSF 전체 규모인 4400억유로로 늘리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EFSF의 대출 여력을 어떻게 늘릴지에 대해선 오는 6월 정상회의로 합의를 미뤘다.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금리를 낮춰주는 방안도 아일랜드의 법인세율 인상을 요구해온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돱전문가들의 가장 낮은 기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돲고 혹평했다. 특히 은행 시스템의 부실화 가능성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U 회원국 가운데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거나 받을 가능성이 높은 국가가 늘면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진 은행이 늘고 있는데도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투자의 현인' 워렌 버핏은 24일 CNBC와 인터뷰에서 "유로존 붕괴가 상상도 못할 일은 아니다"라며 "현재와 같은 단일 통화 시스템에서 3~5개국이 다른 국가에 무임승차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도 지난주 FT 기고문에서 "EU내 재정흑자국과 적자국 사이에 격차가 벌어져 사실상 2개의 유럽으로 나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주 포르투갈 의회는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긴축안을 부결시키고 주제 소크라테스 총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신용평가사 S&P는 정치적 불안을 이유로 포르투갈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2단계 강등했다. BBB는 투자부적격(정크)보다 2단계 높은 수준이다.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인 B로 강등되면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담보 인정을 받지 못해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포르투갈 은행들은 지난해 12월 이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막혀 대부분의 자금을 ECB에 의존하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의 현재 현금 보유액은 40억유로에 불과한데 당장 다음달에 42억3000만유로, 오는 6월까지 총 100억유로의 채권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국채 발행을 통한 차환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시장에서 이미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채 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의문이다.

현재 포르투갈은 국채 금리가 유로존 가입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2월4일부터 지속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여겨지는 7%를 상회하고 있으며 지난 24일에는 7.786%까지 치솟았다. 그리스는 국채 금리가 7%를 넘어선지 18일만에, 아일랜드는 20일만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규모가 500억~700억유로일 것이라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내놓고 있다. 이는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1100억유로)와 아일랜드(850억유로)보다는 작은 수준이다.

하지만 차기 선거 때까지 잠정정부의 수반을 맡게 된 소크라테스 총리는 여전히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총리는 EU 정상회의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했다가 기자들과 만나 포르투갈은 구제금융없이 자력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포르투갈이 EU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낫다는 의견은 아이 같은 생각"이라며 "EU가 포르투갈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 또 다른 국가도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포르투갈 정부는 지난 10일까지 국채 발행을 통해 올해 차입 예정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4억유로를 조달했다. 가장 최근 국채 입찰이 이뤄졌던 지난 10일에도 수요가 입찰 예정물량을 넘어섰다. 아울러 포르투갈 정부는 구제금융을 받으면 국가 신뢰가 하락해 오히려 시중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이미 과거 두 차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민들 사이에 구제금융에 대한 반감이 높다. 여소야대의 정치구도 속에서 포르투갈 정부가 구제금융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에서는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까지 재정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스페인은 유로존의 4대 경제대국이다. 경제규모가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모두 합한 것의 두 배나 된다. 스페인까지 구제금융이 필요한 지경에 처하면 유로존을 넘어선 글로벌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스페인이 포르투갈과 다르다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가장 큰 이유는 스페인이 재정적자가 심각하긴 하지만 국가부채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란 점이다.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GDP의 11.1%에 달한다. 유로존의 성장안정협약에서 허용한 상한선(3%)을 3배 이상 웃돈다. 하지만 국가부채는 GDP의 53.3%다. 재정적자 비율은 포트투갈의 9%에 비해 소폭 높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포르투갈의 83.0%보다 나은 편이다.

JP모간 자산운용의 닉 가트사이드 채권부문 대표는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는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라는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갖고 있었지만 스페인은 재정적자만 문제"라고 분석했다.

'여소야대' 구도로 강력한 경제개혁이 추진되기 힘들었던 포르투갈과 달리 스페인은 은행과 연금, 노동시장 등에서 구조 개혁이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 그레디트 아그리콜 은행은 "스페인 정부가 지금까지 진행한 재정 및 경제개혁은 성공적이었으며 투자자들의 신뢰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됐던 지난 24일 스페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이날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포인트 이상 뛰어오르며 7.8%까지 치솟았지만 스페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5.169%로 전날 5.159%와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었다.

스페인은 유럽의 벤치마크인 독일 국채와 금리차가 최근들어 0.3%포인트 축소되며 포르투갈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금리 비동조화는 이미 올초부터 시작됐다. 포르투갈의 국채 금리가 연초 대비 1%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스페인의 금리는 0.5%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ING의 알레산드로 지안산티 투자 전략가는 "위험 국가군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잠재 위험 국가군인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이 금리 비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달 7일 금리를 인상할 경우 아직 주택시장과 금융권이 안정되지 못한 스페인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이다. 아울러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그리스나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 경험했던 급격한 국채 상승을 똑같이 겪게 될 경우 다시 한 번 재정위기의 전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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