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덜 난' 선진국, 위기 또 터지면 속수무책

'거덜 난' 선진국, 위기 또 터지면 속수무책

권성희 기자
2011.03.28 11:54

일본은 대지진으로, 유럽은 계속되는 재정위기로 위기 대처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8일 선진국들이 또 다른 위기에 대처할만한 재정적 여력을 거의 소진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일본과 유럽이 직면한 위기는 각각 자연 발생적이고 인간이 초래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미 과도하게 늘어난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본은 국가 부채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226%에 달해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이 곧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에 부과되는 책임 늘어나 재정 부담 증대

일본과 포르투갈의 위기 모두 세계가 안고 있는 좀 더 큰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 정부의 책임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정부는 어떤 위기에서도 국민과 투자자, 은행, 기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이 때문에 정부의 재정 여력은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다.

2003~200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던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학 교수는 "선진국들이 또 다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당수 국가가 또 한번 시스템을 구제할만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카멘 라인하트 연구원과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선진국의 평균 국가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74%로 1970년대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선진국의 부채는 정부의 역할이 크게 바뀌면서 늘어왔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에 의지할 수 있는 자금줄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마을을 재건해야 하며 은행과 민간 기업들의 빚까지 지급 보증해야 한다.

정부 재정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늘어나지만 선진국 정부의 수입은 반대로 점점 줄고 있다. 선진국은 경제성장률이 개발도상국에 비해 낮은데다 인구 고령화까지 진전되고 있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상태다. 하지만 세율은 정치적 반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로고프 교수는 "정부는 어려울 때 항상 옆에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세율은 언제나 낮게 유지돼야 한다는 인식 또한 공고하다"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일본, 이탈리아 등 부채 규모 이미 한계치

IMF는 최근 23개 선진국에 대해 실질 부채 수준을 계산한 뒤 과거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는 선에서 부채 비율이 가장 높았던 때와 비교해 감내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이 결과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이슬랜드는 이미 부채 규모가 한도에 도달한 것으로 나왔다. 이들 5개국 가운데 그리스는 이미 구제금융을 받았고 포르투갈은 시장에서 구제금융 신청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시 심각한 국가부채에 직면해 있는 미국은 GDP의 51%에 달하는 규모의 부채를 더 늘려야 역사상 최대 부채비율에 도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면 15년 뒤에 미국 역시 국가부채가 한계에 도달할 것이란 분석됐다.

일본은 대지진에 따른 피해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현재 226%인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몇 %포인트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럽도 구제금융 비용이 늘어나면서 GDP 대비 84%인 유로존 국가 부채비율이 6%포인트 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정부의 부채 비율이 늘어나면 최악의 경우 투자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정부가 대처할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금융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

정부가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자국 통화가 있는 경우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의 실질적인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국민연금이나 다른 금융기관에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국채를 매입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아일랜드는 특별 장기 국채를 연금펀드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재정 긴축안은 정부가 세수 내에서 지출하지 않는 한 효과가 나타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방법은 또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며 비용은 어떻게 지불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일부 경제학자들은 개인과 은행이 부담할 수 있는 부채의 규모를 정해 놓는다면 비용이 많이 드는 금융위기가 줄어들거나 발생하더라도 덜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WSJ는 결국 선진국 정부가 세율을 올리거나 너그럽지 못한 정부가 되거나 아니면 세율 인상과 너그럽지 못한 정부를 동시에 채택하거나 3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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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희 기자

안녕하세요. 국제부 권성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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