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클해도 못 구해" 주사 대신 먹는 약...20년 전 유리주사기도 꺼냈다

"광클해도 못 구해" 주사 대신 먹는 약...20년 전 유리주사기도 꺼냈다

정심교 기자
2026.04.24 10:50

[MT리포트]구멍 뚫린 주사기 안전망 ④

[편집자주]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나프타 공급 부족이 주사기 수급 불안으로 이어지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주사기 매점매석 행위를 금지하고 '사재기' 단속에 나섰는데도 의료 현장 일각에선 주사기 '품절'이 이어진다. 주사기 공급량은 예년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주사기 수급이 불안한 원인을 진단하고 의료제품 공급 안정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본다.

주사기·주사침 등 의료소모품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일선 현장에선 피부로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란 볼멘소리가 쌓인다. 이런 주사기 대란에 개원가에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리주사기가 대체품으로까지 거론된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중동전쟁 대응 제4차 보건의약단체 회의'를 열고, 수급 불안정 우려가 있는 주사기를 앞으로 7주 동안 50만개씩 추가 생산하고 소아청소년이나 분만·혈액투석 의료기관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또 14일 재정경제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주사기 및 주사침 매점매석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주사기·주사침 제조업자·판매업자가 주사기(일반용·치과용·필터·인슐린), 주사침(비멸균·멸균·치과용)를 고시에서 정하는 기준 이상으로 과다 보유하거나 판매를 기피하는 행위, 특정 구매처에 과다 판매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1차 의료기관(의원급)을 중심으로 "정부의 대처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은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원가에서 일회용 주사기를 한 달치 이상 갖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전쟁 이전엔 의원 한 곳당 적게는 6개월에서 1년치까지 비축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호소했다.

개원의들이 의료소모품을 구매하는 대표적인 쇼핑몰은 대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의사장터' 쇼핑몰이다. 기존엔 한 번에 몇 박스씩 살 수 있었지만, 중동전쟁 발발 이후 하루 1박스(1주일 치)만 살 수 있어 최소 한 달분을 쟁여두려면 주 1회씩 구매해야 한다.

지난 3일 의사장터 쇼핑몰에서 일회용 주사기가 품절 상태로 떠있다.  /사진=의사장터 화면 캡처
지난 3일 의사장터 쇼핑몰에서 일회용 주사기가 품절 상태로 떠있다. /사진=의사장터 화면 캡처

심지어 주사기·주사침을 하나라도 아껴 쓰기 위해 환자에게 주사제 대신 경구약으로 처방을 바꾸는 경우도 늘었다. 서울시의사회 소속 개원의 A씨는 "일회용 주사기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주사제과 경구약 중 선택할 수 있을 때 최대한 경구약으로 처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부는 줄곧 '주사기 재고가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5시 기준 주사기 생산량은 420만개, 출고량은 405만개로 당일 총재고량은 4766만개로 집계됐다. 지난 14일 고시 시행 후 일주일 동안 일일 평균 생산량이 전년도 생산실적보다 14.1% 증가한 건데, 식약처는 "추가 생산 물량은 온라인몰이나 수급이 필요한 병·의원에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개원의 B씨는 "의료소모품 쇼핑몰에서 '광클릭' 하지 않는 이상 주사기가 동나는 마당에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정부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어 마음 놓고 진료하기가 불안하다"고 쓴소리를 냈다.

이런 이유로 유리주사기가 부활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유리주사기는 나프타와 상관없는 유리 재질로, 주사침과 함께 소독해 여러 번 쓸 수 있는 용도인데 현재는 일회용 주사기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개원의 C씨는 "20여년 전 사둔 유리주사기 보관 박스를 찾아서 사용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며 "일회용 주사기를 지금보다 더 구하기 어려울 때 이 방법까지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중동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개원의들은 정부가 비축유를 확보해온 것처럼 치장물자(전쟁 발발 시를 대비해 확보해두는 물자)로 의료소모품을 전시 수준에 준해 비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황 회장은 "이번 중동전쟁이 아니었어도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이므로 전시에 준해 의료소모품 수급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며 "주사기 같은 의료소모품의 유통기한은 4~5년으로 길다. 전시를 대비해 의료소모품 1년 치 이상을 정부가 미리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D씨(보건정책 전문가)는 기자에게 "나프타 원료를 정부가 들여와 주사기 제조사에 최대한 싸게 넘기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겠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어 정부가 악용을 막기 위한 행정력까지 가동하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유리주사기를 오래된 병원에선 일부 갖고 있겠지만 소독을 충분히 하지 못했거나 유리주사기 속 유리파편이 인체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어 유리주사기를 다시 보급하는 것도 고려할 사항이 많다"며 "우리 의료계로서는 전쟁이 끝나는 게 주사기 수급 대란을 막는 최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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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의료헬스팀장 정심교입니다. 차별화한 건강·의학 뉴스 보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現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의료헬스팀장) - 서울시의사회-한독 공동 선정 '사랑의 금십자상(제56회)' 수상(2025) - 대한의사협회-GC녹십자 공동 선정 'GC녹십자언론문화상(제46회)' 수상(2024) - 대한아동병원협회 '특별 언론사상'(2024) - 한국과학기자협회 '머크의학기사상' 수상(2023) - 대한이과학회 '귀의 날 언론인상' 수상(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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