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와 백기사의 시대[투데이 窓/반영은]

행동주의펀드와 백기사의 시대[투데이 窓/반영은]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2026.06.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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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기업사냥꾼에서 개혁파로 변신
단기 이익에 치중하면 경영진의 용병 불과
승자는 경영권 아닌 기업 미래 만들어야

금융현장에서 M&A 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함께 일했거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경영권 분쟁의 공격과 방어 양편으로 갈라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고려아연 분쟁도 그랬다. 2024년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공개매수에 나서자 베인캐피탈은 최윤범 회장 측 공동매수자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행동주의나 적대적 인수에 맞서는 '백기사' 자본을 조직하려는 움직임도 들린다. 한국 자본시장이 '창과 방패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행동주의펀드와 적대적 M&A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행동주의펀드는 소수 지분을 바탕으로 주주제안과 이사회 진입을 통해 경영을 바꾸려 하고, 적대적 인수자는 경영권 자체를 겨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개매수, 위임장 대결, 소송과 여론전이 뒤섞이며 두 영역의 경계가 흐려진다.

과거 국내 행동주의는 소버린, 칼 아이칸, 엘리엇 같은 외국계 기업사냥꾼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KCGI의 한진칼 개입과 얼라인파트너스의 SM엔터테인먼트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거치며 의제가 달라졌다. 단순 배당 확대 요구를 넘어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불투명한 내부거래, 무책임한 자본배분과 무기력한 이사회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의 공습으로 여겨지던 행동주의가 한국 기업의 나쁜 관행을 고치는 시장규율로 진화한 것이다.

순기능은 분명하다. 현금과 자사주는 많지만 투자와 환원의 원칙을 설명하지 못하는 기업, 계열사 거래와 승계 과정이 불투명한 기업은 행동주의의 표적이 된다. 행동주의펀드는 흩어진 소액주주를 대신해 질문하고 이사회에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한다. 한국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깨우는 경고등이자 수술칼인 셈이다.

일본의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행동주의 참여 펀드는 10년 전 8개에서 2024년 73개로 늘었고, 2024년 일본 기업 대상 캠페인은 전년보다 47% 증가해 미국 다음으로 많았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요구하자 기업들은 사업 재편, 비핵심 자산 매각과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2026년 5월 말까지 731개 상장사가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했다. 오는 7월 23일부터는 이사가 회사와 주주를 위해 충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한 개정 상법도 시행된다.

그러나 행동주의펀드를 소액주주의 수호천사로만 볼 수는 없다. 펀드의 목적은 사회개혁이 아니라 투자수익이다. 과도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요구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위축시키거나, 사업을 서둘러 분할·매각해 단기 주가만 끌어올릴 유인이 있다.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팔고 떠난다면 남아 있는 주주에게는 개선의 약속만 남는다. 백기사 역시 기존 경영진의 자리를 지켜주는 대가로 유리한 조건을 얻는다면 일반주주의 백기사가 아니라 경영진의 용병일 뿐이다.

따라서 공격과 방어의 정당성은 이름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행동주의펀드는 투자목적과 다른 투자자와의 연대, 예상 보유기간과 회수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배당 확대나 자산 매각을 요구할 때에는 3~5년 뒤 현금흐름과 경쟁력에 미칠 영향도 제시해야 한다. 백기사 유치와 신주 발행 같은 방어수단도 경영진의 영구 집권이 아니라 주주가 판단할 시간을 확보하는 한시적 장치여야 한다.

기업의 가장 좋은 경영권 방어는 방어장치도 백기사도 아닌 높은 기업가치다. 투자 원칙과 적정 현금 수준, 주주환원 정책과 계열사 거래 기준을 평소 시장에 설명해야 한다. 행동주의가 나타난 뒤 '투기자본'이라고 비난하기보다 왜 시장이 공격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행동주의펀드는 기업의 약점을 비추는 거울이자 때로는 그 약점을 이용해 수익을 얻는 투자자다. 공격자는 장기 기업가치를 증명하고 방어자는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진정한 승자는 경영권을 차지한 쪽이 아니라 분쟁이 끝난 뒤 더 좋은 회사를 남긴 쪽이어야 한다.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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