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나와 "유명 변호사 살인교사" 자백했다 체포...공소시효 착각[뉴스속오늘]

방송 나와 "유명 변호사 살인교사" 자백했다 체포...공소시효 착각[뉴스속오늘]

류원혜 기자
2026.08.2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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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김씨가 2021년 8월 27일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던 모습./사진=뉴시스
김씨가 2021년 8월 27일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제주동부경찰서를 나서던 모습./사진=뉴시스

2021년 8월 20일. 미제로 묻혀 있던 '제주 이승용 변호사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김모씨(60)가 사건 발생 22년 만에 검거됐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한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털어놨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김씨는 증거 부족으로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숨진 상태여서 새로운 증거나 목격자가 나오지 않는 한 사건은 미제로 남을 전망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 흉기 피살…공소시효 15년 만료
사건 현장./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건 현장./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건은 1999년 11월 5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시 삼도2동 한 골목길에 주차된 승용차 운전석에서 이승용 변호사(당시 44세)가 숨진 채 발견됐다. 흉기로 가슴과 복부 등을 여러 차례 찔린 상태였으며 혈흔은 도로에서부터 차량 내부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장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목격자나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경찰은 도난당한 금품이 없는 점과 흉기에 찔린 흔적 등을 토대로 원한에 의한 계획 살인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이 변호사는 제주 출신으로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을 거쳐 1992년 고향인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부정부패를 바로잡는 데 앞장섰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료 변론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변호사가 1998년 제주도지사 선거 후보의 비리를 폭로하고, 폭력조직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원한을 샀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검 결과 흉골을 관통한 흉기가 심장을 찌른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흉기와 형태가 달라 특정할 수 없었다.

경찰은 전단을 배포하고 현상금을 내거는 등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으나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은 2014년 11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장기 미제로 남았다.

사건 발생 20년 만에 나타난 조폭…"겁주려다 죽였다"

잊혀 가던 사건의 재수사 불씨를 당긴 인물은 김씨였다. 그는 2019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자신이 이 사건에 가담한 범인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과거 제주 폭력조직 '유탁파' 일원이었다. 두목이 이 변호사에게 겁을 주라고 지시했다"며 "같은 조직원인 손모씨와 공모해 상해만 가하려 했다. 그런데 손씨가 혼자 실행하다가 일이 잘못돼 이 변호사가 숨졌다"고 설명했다.

또 손씨가 "허벅지를 공격하려 했는데 이 변호사가 심하게 저항해 어쩔 수 없이 상체를 공격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흉골을 관통할 정도의 치명상은 움직이는 사람에게 입히기 어렵다며 처음부터 살해 목적으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범행에 쓰인 흉기에 대해 묘사한 그림./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씨가 범행에 쓰인 흉기에 대해 묘사한 그림./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씨는 범행 당시 이동 경로와 가로등이 꺼져 있던 상황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범행에 쓰인 흉기에 대해서는 "과도를 갈아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며 직접 그림을 그려 보여주기도 했다.

뒤늦게 자백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늦기 전에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해당 내용이 방송되자 경찰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공소시효 착각해 자백…22년 만에 체포

2020년 6월 방송화면./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20년 6월 방송화면./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경찰은 2021년 4월 캄보디아에 있던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약 4개월 뒤 국내로 송환된 김씨는 살인 교사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당초 김씨는 살인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생각해 방송에서 범행을 털어놨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김씨는 공소시효 만료 전인 2014년 3월 사기 혐의로 수배된 상태에서 해외로 출국해 13개월간 체류했다.

형사소송법 253조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분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이에 김씨의 공소시효는 2015년 12월까지 연장됐다. 여기에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김씨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졌다.

경찰에 붙잡히자 김씨는 "손씨가 직접 살인 지시를 받았다", "난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방송 출연 이유에 대해서는 "용의선상에 이 변호사의 가족도 올랐던 만큼 방송을 통해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례비를 받아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유탁파 두목과 손씨는 이미 숨진 상태여서 김씨 진술 외에는 별다른 핵심 증거가 없었다. 다만 이웃 주민들은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를 김씨가 평소 가지고 다녔다고 증언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김씨의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해 재판에 넘겼다.

무죄→징역 12년→무죄…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2021년 8월 20일 김씨가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던 모습./사진=뉴스1
2021년 8월 20일 김씨가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던 모습./사진=뉴스1

검찰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김씨가 직접 범행을 실행하지 않았더라도 손씨와 살인을 공모한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봤다.

김씨는 법정에서 "리플리 증후군(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장애)을 앓고 있다. 방송에서 한 말은 부풀려서 이야기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에는 "이 변호사 살인에 대한 내용은 사건 발생 10년 뒤 손씨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2022년 2월 1심 재판부는 김씨가 방송에서 진술한 내용에 일부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김씨가 자신의 인터뷰를 내보낸 PD를 협박한 혐의는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김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같은 해 7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협박 혐의의 징역 1년 6개월을 더해 총 형량은 13년 6개월이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범행 당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흉기가 사용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범행 공모 당시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살인죄에 대한 판단은 2023년 1월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김씨의 제보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 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정황 증거만으로 김씨와 손씨가 살인을 공모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김씨는 협박 혐의로 선고받은 1년 6개월을 모두 복역하고 출소했다. 구금 없이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도 김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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