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뮤지컬 '풍월주' 배우 성두섭 "히스 레저 같은 배우 되고 싶어요"
고대신라. 자유연애가 활발하고 성적으로 개방되었던 시절, 진골 성골 출신의 신분 높은 여자들을 접대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 곳이 바로 '운루'다. 각기 사연은 다르지만 운루로 모여든 남자들. 그들은 바람과 달의 주인, '풍월주'(風月主)라 불린다.

운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풍월주 '열'과 그의 오랜 동료 '사담', 천하를 손에 쥐었지만 열의 마음만은 얻지 못한 '진성여왕' 이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창작뮤지컬 '풍월주'가 지난 4일 개막 이후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그 풍월주의 주인공인 배우 성두섭을 만났다.

두섭(斗燮). 이름이 참 '촌'스럽다. 날렵한 턱선과 오똑한 콧날, 훤칠한 외모와는 언뜻 안 맞는 것도 같은데, 실눈이 되도록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 같기도 하다. "그나마 성이 '성'씨라서 이름을 살렸죠 뭐, 배우 (김)수로 형도 그랬어요."(웃음)
마주한 이를 무장해제 시키는 미소가 너무 선해 보인다고 하자, 웃는 모습은 어릴 때 그대로라며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오, 정말 어린이 훈남인데?'라고 생각하는 찰라, "동네 아주머니들이 제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크면 여자애들 많이 울리겠다고 했어요"라며 자랑이다.
◆"남자기생, 롤모델이 없었다"
실제로는 몇 명이나 울렸을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 '풍월주'를 보며 애절하고 가슴 절절한 사랑에 훌쩍거린 여성관객이 꽤 많다는 전언이다. 작품 '풍월주' 자체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으나, 배우 성두섭의 입지만큼은 확고해졌다.
대본을 본 순간 '열'이라는 인물에 끌렸다는 성두섭은 기존에 없던 '남자 기생'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감정을 억누르는 내면연기를 펼치고 있다. "캐릭터 연구를 위한 롤 모델이 없었어요. 역사 속에도 남자기생이 없었기 때문에 대본 안에서 찾으려 했고, 제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꺼내려고 애썼어요."
사실 풍월주는 관객 입장에서 보면 모호한 면이 많은 작품이다. 남자 기생집이라는 낯선 설정과 미화된 동성애 관계, 중·대극장에서나 선보일 만한 3층 구도의 무대 등은 새롭긴 하면서도 선뜻 받아들이자니 익숙하지 않다. 성두섭 역시 이런 어려운 점들 때문에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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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하면 떠오르는 황진이만 해도 일단 춤 잘 추고, 글도 잘 쓰고, 잔재주가 많잖아요, 그런데 풍월주 무대에서는 표현이 한정적이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죠. 또 인물 간에 관계도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었어요."

풍월주의 어떤 대사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표현 때문에 단편적으로 이해하려면 어려울 수 있다. 예컨대 극의 마지막 부분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장면에서 사담은 숫자를 세면서 "여덟 다음엔 아홉, 아홉 다음엔, 음... 너 할까? 그러면 나 할래?"라고 하자 열은 "아홉 다음엔 열!"이라고 받아친다.
이에 대해서도 성두섭은 "풍월주 대사는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풍부하게 한다"며 "은근히 야한 대사조차도 센스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때론 답답할지도 모르지만, 여백을 그대로 놔두는 게 이 작품의 색깔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춤에 서예까지 교습받아
그는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진성여왕 앞에서 혼자 춤사위를 선보이는데, 성두섭만의 정결하고 고요한 느낌의 선이 느껴진다. 한국무용을 전혀 배워본 적 없는 그는 이번에 한국무용 전공자이며, '스트리트 댄서' 출신인 정도영 안무가에게 개인레슨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에 추는 춤은 무용이기보다는 몸부림에 가까운데, 묵직하면서도 가벼울 때는 한없이 가벼워지면서 느낌이 많이 실리는 한국무용의 매력을 이번에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또 중간에 사담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는 직접 붓글씨를 써야한다. 이 때문에 서예학원도 다녔다. 1층 관객들은 글씨를 볼 수 없지만, 2층에서 보면 다 보이기 때문에 잘 써야한단다.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 뭐든 열심히 배우려는 성실함이 묻어나는 노력파 배우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사심 가득한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 성두섭이 실제 동성애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그랬다면 이번 작품을 이해하는 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어 물어보니 질문이 끝나자마자 "그런 적 없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누가 저를 좋아한 적은 있었어요. 친구 때문에 알게 된 형이었는데, 처음에는 전혀 모르고 친구들과 여럿이 크리스마스에 그 형한테 놀러갔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죠. 어쩐지 제가 지방공연 할 때도 따라오겠다고 하고, 어딜 갈 때도 저보고 꼭 같이 가자고 하면서 굉장히 친하게 대해줬는데, 이태원의 한 바에 갔다가 제가 눈치를 채버렸죠.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워 뛰쳐나와서는 택시타고 집에 왔어요."
'확실히 남자보다는 여자가 좋다지만 이러나저러나 내가 그의 여자친구가 아닌 이상 아쉽긴 마찬가지다. 앗 이런! 이 기자야~ 지금 인터뷰 중이라고.'
기왕 시작한 사심 인터뷰라 좋아하는 여성스타일도 물었다. 그는 "일단 편하고 유쾌했으면 좋겠다"며 “제가 워낙 말일 없는 편이지만 서로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물론 예쁘면 고마운 거죠, 하지만 성격이 더 중요한 건 확실해요"라며 이번에도 눈이 작아지도록 웃는다.
그는 이미 열애 중이다. 여자친구도 배우다. 대학로에선 소문난 커플이다. 작품을 함께 하면서 만난 이들은 대본이 나오면 서로 같이 봐주면서 연기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동료이자 연인으로 함께 하며 돌봄을 받다보니 연애 전보다 더 잘생겨졌다는 말을 듣는다며 '또' 자랑이다.
솔직한 대답에 여성 팬들의 원성을 사진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팬들이 줄어든다고도 하던데, 그런 걱정을 하면 연기하기 힘들 것 같다"며 "제가 하는 작품과 제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께 너무 고마운 마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작품으로 성숙한 연기를 보여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는 천성 배우다.
성두섭은 아직 못해본 악역도 꼭 해보고 싶고, 뮤지컬 외에 영화나 드라마 분야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히스 레저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역할을 꼭 해봤으면 합니다."
풋풋한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성두섭, 그의 진솔한 연기가 다양하게 꽃피어날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뮤지컬 '풍월주'는 대학로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오는 7월 29일까지 공연한다. 4만~5만원. 1588-0688
